평점 5.5일지라도 나름 훌륭했다?
허술한 SF 설정과 느린 전개라는 비판 속에서도, 이 작품에는 한 장면만으로도 시청자를 붙잡아 두는 강력한 순간이 있다. 그녀가 아버지 앞에서 터뜨린 눈물 한 방울에, 모든 비평은 침묵했다. 완벽하지 않은 작품을 완성한 단 하나의 명연기에 관하여.
세상엔 나와 생각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절절히 깨닫게 해주는 사소한 일상 중, 그 우주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사례 중 하나는 재밌게도 바로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평점인데, 드라마 『19층(19层)』 같은 경우도 그러했다. 못해도 더우반 평점 6은 먹을 줄 알았는데, 현재 거기에 못 미치는 5.5를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상황 설명 부족, 늘어지는 전개, 구멍 숭숭 뚫린 서사, 과학적 논리 부족 등이 무게추처럼 평점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리라.
주야장천 사극만 보다 이런 현대적인 ‘무한류(无限流)’ 드라마는 처음인지라, 그리고 얼마 전에 읽은 『 이상한 미래 연구소(Soonish) 』에서 알게 된 ‘뇌 - 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 - computer interface)’에 대한 호기심 서린 여운도 남아 있어 그런지, 처음부터 몰입해서 봤고, 때때론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뇌를 살살 간질거리는 바람에, 평소의 금기를 빼고 연달아 두 편을 볼 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시청자가 제기한 불만, 비평에 심히 공감하는 바이지만, 단 하나만큼은 공감할 수 없었다. 바로 춘위(春雨)라는 캐릭터 성격이 ‘답답하다, 그래서 짜증 난다’ 대한 불평불만이다.
"작품이 완벽하지 않아도 어떤 장면/인물 하나 때문에 오래 남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장면이 그러하다. 춘위가 아버지에 대해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을 하소연하듯, 혹은 곪았던 상처가 터져 나오듯 폭발시키는 이 장면에서 보여준 배우 쑨치엔(孙千)의 절제된 감정 연기는, 두 부녀의 갈등에 억하게 공감하지 않았던 나조차 절로 눈물을 줄줄 흘리게 할 정도로 거울신경(mirror neurons)을 억하게 자극하는 명연기였다.
보통 배우들은 이런 장면에서 울부짖거나 고함을 지르는 등의 과장된 표정이나 발성 연기로 감정을 과하게 발산시키곤 하는데, 시청자 처지에선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는 오히려 감정 전달의 저항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가짜 눈물을 숨기고자 그런 과장된 연기가 필요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쑨치엔의 절제된 감정 연기는 빈 감정을 시청자 스스로 채우게 할 정도로, 즉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리게 할 정도로 정묘했다.
춘위의 '소통 부재'를 그저 고구마 전개나 답답함으로 치부하는 시청자도 있지만, 이는 '대마왕'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뚝심과 쌀쌀맞음, 그리고 남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강직함이라는 성격의 특성을 아주 적절하게 반영한 의도적인 연출이라 할 수 있겠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차가운 보이는 이런 사람들은 친해지기도 어렵고 그래서 오해받기도 쉽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찌어찌해 친해진 사람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면서 뒤에서 말없이 도와주는 '외강내유'의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의리 하나만큼은 무협지의 대여협(大女侠) 뺨치는 진국 캐릭터다.
물론, 지적으로 뛰어난 캐릭터 설정답지 않게, 나머지 등장인물처럼 다 함께 바보가 되는 장면도 나오지만, 좋게 해석하면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은 똘똘해도 모이면 어리석어진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춘위라는 캐릭터 설정에 대한 합리적인 비평이 존재하겠지만, 그런 비평 따위는 쑨치엔의 연기에 압도당한 나에겐 소귀에 경 읽기다.
참고로 춘위의 아버지 춘이밍(春一铭)은 천촹(陈创)이 연기했는데, 그는 바로 「 당조궤사록(唐朝诡事录) 」 시리즈에서 비계사 역을 맡은 그 배우다. 처음엔 외모가 아니라 목소리로 알아챘지만, 아무튼 나도 이제 한두 명 정도 눈에 익은 배우를 마주칠 정도로, 중드에 관록이 좀 붙어가나보다.
SF란 현재의 과학 기술을 그대로 고증하거나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관 안에서만큼은 완벽하게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그럴싸한 과학적 가설이나 설정을 나름 구축한 다음, 그 세계관 안에서 과학적 논리의 일관성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간혹 이를 간과한 채 현재의 과학적 잣대로 들이대는 사람들은 『 삼체 』 같은 명작을 ‘개연성’이 없다는 등 터무니없는 비판을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의 모든 SF 명작, 예를 들면 「스타워즈」, 「에이리언」 시리즈 등은 SF가 아니라 그저 판타지 영화가 되는 셈이다.
아무튼, 내가 볼 때 드라마 「19층(19层)」의 가장 큰 단점은 그런 세계관을 구축하는데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것, 그렇기에 위 사진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과학적 구멍이 생기게 되어 뭇 사람들의 질타를 받게 된 것이리라.
사진에 보이는 칩은 주요 등장인물들의 뇌에 이식된 ‘뇌 - 컴퓨터 인터페이스’ 칩이다. 저렇게 맨눈으로도 또렷하게 보이는 형태와 부피를 가진 칩이 헬멧(VR 장비)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머리뼈를 뚫고 뇌에 박힌다니, 심지어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통증이나 이물감조차 없이 말이다. 이건 물리적으로도 생리학적으로도 너무나도 억지스럽다. 그렇다고 거창한 설명을 해달라는 건 아니다. "특수 나노 물질로 제작되어 피부와 뼈를 투과할 때 액상으로 변했다가 뇌신경에 안착하며 다시 고형화된다"거나, "헬멧에서 발산되는 특정 주파수가 통각 세포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마비시킨다" 같은, 드라마 내부의 규칙을 설명해 주는 단 한두 마디의 대사나 연출만 있었다면, 시청자는 "아, 저 세계에서는 저런 원리로 저게 가능하구나" 하고 알아서 설득당하고 넘어가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에서 명백히 직무 유기했다.
「스타워즈」, 「에이리언」 모두 대충 따져봐도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하이퍼드라이브’, ‘포스’, ‘외계 생물’, ‘체내 기생’ 등의 나름의 세계관 설명이 있다. 아쉽게도 드라마 「19층(19层)」은 그런 점이 미흡하다. 원작인 차이쥔(蔡骏)의 소설 『지옥의 19층(地狱的第19层)』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 춘위는 어떨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AI 번역으로 읽어보고 싶은 욕망이 살짝 생기기는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게임’보단 현실 세계 이야기의 비중이 높아지는 점도 아쉽다. 일단 내게 ‘19층 게임’ 같은 무한류의 서바이벌 게임은 첫 경험이었던 데다가, 나름 흥미롭게 빠져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 개개인의 성장 배경이나 고민을 잘 살펴보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단순히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제공하려고 ‘19층 게임’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19층 게임’은 단순히 물리적인 도전을 넘어, 그들의 내면에 있는 두려움과 집착을 시험하는 무대이자 관문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춘위는 마침내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고, 겁 많고 우스꽝스러운 졸부 2세였던 양바완은 책임감 있고 용감한 소년으로 성장하고, 채무자에게 얻어터지기나 하는 소심한 양아치 장톈창은 든든한 형님으로 거듭나고, 다리 부상으로 펜싱을 그만두게 되어 의기소침해 있던 난샤오친 역시 게임을 통해 서서히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아간다. 드라마 「19층(19层)」은 SF와 서스펜스와 스릴러 요소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19층’이란 게임이 단순히 시청자를 즐겁게 하고자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있는 두려움, 죄책감, 아쉬움, 이기심, 집착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이 때문에 더더욱 많은 사람이 실망한 것이리라. 스릴과 긴장감이 철철 넘치는 무한류 게임을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진부할 대로 진부한 인간의 본성과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라니. 하지만, 잘 만든 SF는 단순히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현재 인간의 모순을 비추는 데 있다는 점에서, 「19층(19层)」의 시도를 마냥 나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앞에서 논한 것과 별도로, 한국 시청자로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자막 번역이다. 드라마 속에서 춘위는 가오쉬안을 시종일관 ‘오빠’도 아닌 ‘선배’도 아닌 ‘가오쉬안’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어 자막은 ‘오빠’라고 번역했다. 이건 춘위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무시한, 지극히 주관적인 번역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에서도 선배나 친한 연상에게는 '오빠(哥哥, 끄거)' 같은 호칭을 쓰긴 하겠지만, 춘위가 이를 무시하고 풀네임으로 부른다는 건, 그녀가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를 철저히 두며, 사회적 서열이나 관습에 굴복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입생이 크루저 바이크(아마도 BENDA Chinchilla 300?)를 타고 등교하는 장면이나, 왼쪽 손목이 아닌 오른쪽 손목에 귤만 한 시계를 찬 장면, 그리고 아빠와 화해하기 전까지 아빠를 풀네임으로 호칭하는 등 이 모든 설정은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내키는 대로 한다는 그녀의 반항적인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 번역가는 한국 로맨스 드라마의 '오빠-동생' 프레임에 갇혀 버렸는지, 이걸 '오빠'로 뭉뚱그려 번역해 캐릭터의 본질을 훼손해 버렸다. 춘위는 절대 남에게 기대거나 애교 섞인 목소리로 '오빠'라고 부를 위인이 아니다! 차갑고 까칠한 대여협 그 자체니까 말이다. 사람 번역가가 드라마의 문맥과 캐릭터의 성격보다 본인의 감상(춘위와 가오쉬안의 어릴 적 인연이라는 로맨스적 서사)을 앞세운 나머지 이런 전형적인 오역이자 '과해석'의 폐해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