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소에서 영계라고 불리는 젊은 여자들과 웨이터들은 대부분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었고, 이들에게 이곳은 유흥가가 아닌 단지 치열한 삶의 현장에 지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태원은 해방구였다. 군사독재 그리고 탄압으로 억압되있던 대한민국에 미군이 주둔한 이태원은 대한민국이라 할 수 없었다. 우리땅이 아닌 미국땅, 미국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았고, 당시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던 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이태원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는 클럽이나 게이바, 유흥가들이 즐비했고 그곳에는 한국인 무용수와 웨이터, 잠시나마 지루한 일상에서 일탈하고 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정부는 88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이 찾을 만한 이국적인 장소가 이태원밖에 없다는 이유로 이곳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았다. 구속되지 않는 곳,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 이국적인 곳, 80년대 이보다 매력적인 곳이 또 있었을까? 그렇기에 젊은이들은 이태원의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향했다. 자유라는 명분아래,
사진작가 김남진은 80년대 서울 최고의 유흥가였던 이태원의 밤 모습을 사실적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흑백사진 속 담긴 그들의 얼굴엔 여유가 느껴지지만 묘한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현재 미군이 떠나간 이태원은 과거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변모되었다. 하지만 그시절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있다. 사진으로 무엇을 기록한다는 것은 사라져 버릴 것을 기억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