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쿠팡공화국’이라는 관용어가 무색하지 않겠다. 무려 3370만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되는 대규모 사이버 보안 사고에 국회와 규제 당국, 국세청, 국가정보원까지 뛰어들고 있지만,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징벌적 과징금 도입 등 현재 논의되는 규제 강화 방안은 이번 사고에 소급적용하기 힘든데다, 쿠팡이 제공하는 로켓 배송의 편리함과 멤버십의 중독성 탓에 고객 이탈과 같은 시장의 자율 규제 역시 작동하지 않는 탓이다. 이에 국회 상임위원회 무려 6곳이 이틀간 한 기업에 대해 연석 청문회를 개최하는 사상 초유의 움직임에도,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 이사회 의장은 아직 한국의 고객들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조차 건네지 않았다.
김 의장은 쿠팡의 모회사인 쿠팡아이엔씨 지분을 10.1% 보유하고 있다. 여타 대주주에 비해 절대적인 지분 보유는 아니지만 1주당 29표의 권리를 갖는 차등의결권 구조를 만들어 70%가 넘는 의결권을 행사한다. 쿠팡아이엔씨가 100% 지배하는 한국 법인과 관련한 모든 의사결정을 독점할 수 있는 강고한 지배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권한에 비례하는 신의성실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인인 그는 미국 시장에 모회사를 분리 상장한 뒤 한국 법인과의 관계는 모두 단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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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삼성공화국’이라 불리던 시장 통제 실패 사례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은 소액주주들이었다. 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사 모은 주식 의결권을 위임받은 시민사회가 경영진을 압박했고, 차츰 기업 거버넌스가 개선됐으며, 마침내 상법 개정 등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제 ‘서학개미’들이 쿠팡 주식에 관심을 두면 어떨까? 환율 상승의 주범이라는 천덕꾸러기 노릇 대신, 자본시장의 국경 너머에 팔짱만 끼고 있는 거대 플랫폼 경영진에게 신의성실을 촉구하는 글로벌 주주 행동의 주체가 될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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