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펜타닐을 '대량살상무기(WMD)'로 공식 지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
한 사건은 현대 국제 정치와 안보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지금까지 WMD라는 용어는 핵, 생물, 화학 무기처럼 국가 간의 전면전에서 사용되는 파괴적인 병기들에 국한되어 왔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연간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펜타닐의 치명성을 '화학적 공격'으로 규정함으로써, 마약 문제는 보건과 치안의 영역을 넘어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한 국가 안보와 전쟁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이번 조치가 지니는
가장 핵심적인 함의는 미국이 외부 위협에 대응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군사적 옵션의 폭을 무제한으로 넓혔다
는 데 있다. 펜타닐이 WMD로 지정됨에 따라 미 정부는 기존의 마약 단속법이 아닌, 테러 방지 및 무기 확산 방지에 적용되던 초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마약 카르텔을 단순 범죄 조직이 아닌 외국 테러 조직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제조 및 유통 시설을
WMD 생산 기지로 규정해 미군의 직접적인 정밀 타격이나 특수 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명분
을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수엘라를 향한 미국의 시선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행정명령 서명 직후 지상 작전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베네수엘라를 정조준한 것은, 이번 WMD 지정이 단순한 마약 퇴치용이 아니라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둔 '침공 명분 쌓기'일 가능성을 시사
한다. 과거 부시 행정부가 실체가 불분명했던 WMD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했던 사례를 떠올려본다면, 현재 미국 내에서 실제적인 인명 피해를 낳고 있는 펜타닐은 침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에 훨씬 더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도구가 된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은 오랫동안 마약 밀매와 결탁한 '나르코 테러리즘' 국가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펜타닐이 WMD로 분류된 시점에서 베네수엘라는 이제 미국을 향해 독극물을 투사하는 '발사대'와 같은 존재로 재정의된다. 이는 미 본토 여론을 전쟁 지지로 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최근 주변국들과 맺은 군사 협정이나 해상 봉쇄 조치들은 이러한 지상군 투입 시나리오가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결국 펜타닐의 WMD 지정은 미국이 중남미 적대 정권이나 카르텔을 상대로 군사적 실력 행사를 하기 위한 '법적 고속도로'를 닦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