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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데는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없다, 라고 말하는 순간
말과 말 사이의 삶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사무치게 끼어들었다
이병률 / 눈사람 여관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검게 익은 자두를 베어 물 때
손목을 타고 달디단 진물이 흘러내릴 때
아 맛있다, 라고 말하고
나 혼자 들어요
김소연 / 그래서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삐그덕 문소리에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두 잔의 차를 시켜 놓고 막연히 앞잔을 쳐다본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음 속 깊이 인사말을 준비하고 그 말을 반복한다
누가 오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서는 발길
초라한 망설임으로
추억만이 남아 있는 그 찻집의 문을 돌아다 본다
원태연 / 서글픈 바람
내가 나를 버리고 돌아 눕는 날
술잔에 빗물이 고인다.
고독을 동반한 일상들이 술을 권하는 시간,
비워져 가는 술병엔
묵은 세월의 먼지들이 자리한다.
기억은 있으되 실체가 없음이
굳이 술잔을 기울이는 이유는 아니지만
중독된 고독이 따르는 술잔이라
거부할 수 없음이다.
내가 있고 네가 없음이 슬픔이라면
네가 있고 내가 없음은 무엇일까
술병은 바람을 안고 어둠 속으로 들고
나는 나를 안고 추억으로 간다.
김경훈 / 중독된 고독
내가 이 밤에도 그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죽어도 모를 테지만 난 그걸로 됐다.
죽었다 깨어나도 잊지 못하는 그대라는 사람이
나의 반평생 혹은 그 이상을
지배하고 있었단 황홀감은
겪어본 사람만 알 테니까,
실현 가능성이 없는 사랑이라고 해도 뭐가 문제야.
현실이 무슨 상관이야.
그대의 환영에 입 맞출때,
그 잠깐의 사색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백가희 / 당신이 빛이라면
초저녁 퇴근길
이른 감이 없지 않은 켜진 가로등
그아래 거닐다, 설움이 북받치더라.
오늘 많은 일이 있었는데
다정했던건 가로등뿐이라.
나선미 / 초저녁 가로등
밤과 새벽의 사이에서,
여름과 가을의 사이에서,
그리움과 후회의 사이에서.
이따금 당신은 그 사이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가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다시 사라지곤 했다.
사이의 것들은 불친절해서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당신은 접힐 듯 접히지 않는다.
유난히 꼬리가 긴 사랑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나는 차라리 도마뱀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부턴가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겼다.
물어뜯은 손톱은
깎은 손톱처럼 반듯하지 못하고,
당신이 뜯겨나간 내 마음 역시 그랬다.
하현 / 달의 조각
음악 : 신계행 - 가을사랑
영상 : 김동률 -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