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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여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했다.
그럴 때 쓰는 최선이란 말.
그래, 참 신기하고 장한 말이구나.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됐고 사회인이 됐다.
사회에선 최선을 다하는 게 기본 사양이었다.
그래서 혼잣말을 한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 앞에선 섣불리 최선이란 말은 꺼내지 않게 됐다.
사는 일이 내 마음 같지 않게 흘러갈 때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과연 어느 선까지 해야 최선일까.
온 정성과 힘을 다하고도 쓸쓸해지는 건 왜일까.
정답은 모르지만, 한 가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다른 사람의 최선이 만나 부딪친 자리에서
때론 꽃이 피고, 때론 눈물도 자란다는 것,
그게 인생이란 걸 말이다.
정희재 / 최선이라는 말이 전부 담아내지 못하는 것 중에서
"1분이면 마음이 열립니다"라는 책을 보면
잘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실망하는 자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주라고 권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게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이겠지.
우리도 가을이 되기 전까지는
국화꽃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살잖니.
네가 정말 잘 하는 것이
언제쯤 나타날지 우리 같이 기다려 보자꾸나."
이 세상에 진정한 잡초는 없는 법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 이름을 몰라서 잡초라고 부를 뿐이지요.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지?
나는 이름도 없는 잡초처럼 살아야 하나 봐."라고 말하며
비관해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말로 용기를 심어주겠습니까?
이렇게 말해 보세요.
"너는 니가 잡초라고 생각하니? 그래서 슬픈거니?
난 니가 스스로를 잡초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어.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풀과 꽃들은 이름과 무관하게 아름답잖아.
니가 설령 이름없는 잡초라고 해도
자연 속에 존재하는 풀들이나 이름없는 꽃들처럼
지금의 모습으로도 너는 충분히 아름다워.
그리고,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면
너에게 걸맞는 이름도 꼭 나타날 거야.
모든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너 조차도 너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난 이미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아.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싶은 사람,
좋은 영화를 같이 보고 싶은 사람,
같이 잠이 들고 눈 뜨고 싶은 사람,
내 목숨보다 더 크고 소중한 사람,
내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사람.
나중에 너에게 다른 멋진 이름이 생기더라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그렇게 부를거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주세요.
붙여준 그 이름만큼 아껴주세요.
그러면, 그 이름이 당신에게 다시 돌아올 겁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가 가진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만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불행의 길을 걷는다.
절제가 기쁨을 낳는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건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불행한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거나
적어도 지금 당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생은 마치 커다란 모자이크와 같아서
가까이에 있으면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려면 멀리 떨어져서 봐야 한다.
활동한다는 것, 즉 무엇인가를 추진하거나
적어도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행복의 필수요건이다.
이미 바꿀 수 없는 불행한 과거는 되도록 빨리 잊자.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디딤돌로 삼아 더 멀리 뛰자.
객관적인 환경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서로 위치를 바꾼다.
인간을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것은 객관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과 인식은
훌륭한 건강을 전제로 할 때만 올바를 수 있다.
쇼펜하우어 인생론
음악 : Joan Baez The River In The P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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