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촌철살인의 유머와 사회 풍자로 한국 코미디의 흐름을 바꾼 대한민국 1호 '개그맨', 전유성 씨가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희극인들이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임소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금방이라도 무심하게 한 마디 우스갯소리를 던질 것만 같은 얼굴.
늘 웃음만을 주던 희극인들이 그의 사진 앞에서 연신 눈물을 훔쳐냅니다.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 전유성.
76세의 나이로 영면했습니다.
[이홍렬/방송인]
[늘 웃음만 생각했고 고단한 삶을 위로해 주는 역할에 항상 앞장서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1969년 희극 작가로 방송가에 발을 들인 고인은 이른바 몸 개그, 슬랩스틱이 주류였던 한국 코미디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진지한 표정과 느릿한 말투로, 툭 내던지는 유머와 애드립은 돌아서 생각할수록 '피식' 웃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고 전유성/2019년, 데뷔 50주년 기념 <쑈쑈쑈>]
"'사도세자' 사도가 두 자인데 왜 세 자라 그래. (한참 뒤에) 유성아, 사도세자가 왜 웃긴지 이제야 알았어 (하더라고요.)"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로 수많은 '최초'의 시도를 했습니다.
'코미디언' 대신, 익살을 뜻하는 '개그(Gag)'와 맨(Man)을 조합해 만든 '개그맨'이란 말을 처음 썼고, 대학로 소극장 개그를 브라운관 안으로 끌고 와 첫 '공개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고 전유성/1999년 KBS <개그콘서트> 1회]
"남들이 전부다 '김치 김치' 할 적에 다른 거 '신김치' 하고 찍으면 분명히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나가고…"
국내 최초 코미디 전용 극장과 축제, 극단을 이끌며 무대에서 스스로 빛나기보단 동료와 후배들을 뒷받침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김신영/희극인]
"한 물 가고, 두 물 가고, 세 물 가면 보물이 되거든. 너는 보물이 될 거야."
군기문화 등 나쁜 관행을 거부하고, 촌철살인의 유머로 사회 문제를 풍자하는데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병마와 싸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천생 개그맨.
[최양락/희극인]
"아프신 내색을 안 하시고 유머를 던지시는 거예요. 아마 천국에서도 아이디어를 쓰시고 그렇지 않을까…"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남기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습니다.
MBC뉴스 임소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