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에서 11세기까지의 이슬람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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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에서 11세기까지의 이슬람 군대

최고관리자 0 0 02:25

1,2: 우마이야 왕조의 보병 근위대, 8세기 중반.

8세기 무렵의 우마이야 왕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으며, 그러한 풍요로움이 궁정을 지키는 정예 군대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왼쪽에 있는 남자는 머리에 쓴 터번 밑에 뾰족한 투구를 쓰고 있으며, 다른 동료들과 방패를 맞대고 밀집 대형을 이루는 방패벽 전술로 싸웠을 것입니다. 그의 동료는 페르시아 양식의 투구와 비늘 갑옷을 착용했는데,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섰을 때 적군 병사와 일대일 전투로 싸우는 챔피언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우마이야 기병 근위대, 8세기 중반.

베두인(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계 부족) 귀족들은 초창기 이슬람 기병의 대부분을 제공했지만, 말에 탄 사람이 발을 걸치는 도구인 등자가 도입될 때까지 그들의 역할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갑옷을 입지 않은 이 남자는 정찰이나 소규모 전투만을 위한 장비를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4: 우마이야 왕조의 보병 궁수, 8세기 중반.

이 아랍 부족민은 천으로 덮인 투구를 쓰고 있으며, 활집에 시위를 매지 않은 초기 형태의 복합궁을 제외하고도 무거운 철퇴를 지니고 있습니다.

1. 호라산(이란 동부와 중앙아시아 남부 지역) 중기병 , 7세기 중엽

이 기병의 장비는 기본적으로 사산 왕조(224년부터 651년까지 이란과 이라크 지역을 지배한 나라) 후기의 기병들과 같습니다. 많은 이란인들은 동방에서 등자의 사용이 확산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등자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입은 갑옷과 말에 입힌 판갑은 쇠와 청동이 뒤섞여 있습니다.

2. 트란스옥사니아(현재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남서부)의 투르크인, 8세기 초

투르크족 기병의 장비는 이란인이나 아랍인보다 더 뛰어났습니다. 이 남자는 제대로 된 등자를 사용하고, 초기 형태의 사브르(휘어진 곡도)를 휘두르며, 철판들을 가죽 끈으로 묶은 흉갑을 입고 있습니다.

3. 아랍인 보병, 7세기 후반.

창을 던지려는 이 병사는 머리 덮개 아래에 솜을 넣은 두건을 쓰고 있으며, 인도 양식의 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4. 페르시아인 기마궁수, 7세기 후반.

이 남자는 가벼운 갑옷을 입고 있지만 펠트로 만든 갑옷을 걸친 말을 타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말갑옷은 초기 아랍 문헌에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1. 신드(파키스탄 남동부) 기병, 9세기

인더스 강 서쪽에 위치한 무슬림 신드의 군사 장비는동쪽에 있는 힌두교도 힌드(인도)의 장비와 거의 비슷합니다. 이 남자는 커다란 기병용 도끼를 휘두르고 있으며, 인도에서 오랫동안 알려진 가죽 고리 형태로 만들어진 등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 트란스옥사니아 기마궁수, 9세기 후반

이슬람의 트란스옥사니아 정복은 중앙아시아의 문화를 이슬람에 들여왔습니다. 이 남자의 장비는 이전 세기의 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가지고 있는 활은 아랍 전통 양식이 아니라 동쪽에서 들여온 새로운 형태입니다.

3. 아바스 왕조의 기수, 9세기 후반

아바스 왕조의 부유한 궁정에는 훌륭한 장비를 갖춘 군대가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탄 말과 다른 말들이 착용한 특이한 주둥이 덮개는 트란스옥사니아에서 유래했으며, 아마 말이 멋대로 식물을 갉아먹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4: 아제르바이잔 보병, 1 0세기 초,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이웃이자 적인 아르메니아와 장비가 비슷했는데, 둘 다 사슬 갑옷과 판갑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인들은 동로마 제국의 동부 국경 지역에 배치되어 동로마인들을 상대로 맞서 싸웠습니다.

1. 누비아(현재 수단 북부 지역) 출신 보병, 10세기

아프리카인 전사들은 이집트 군대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자유인이나 노예 신분으로 복무했습니다. 이 남자는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 솜으로 만든 누비 갑옷을 입었고 가죽 방패를 들었는데, 19세기까지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 부족들은 이런 형태의 복장을 입고 다녔습니다.

2. 아르메니아 출신의 이집트 기병, 9세기 후반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은 이집트 군대에서 용병으로 복무했는데, 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한 무기는 날이 2개 달린 양날 도끼였습니다. 이 남자는 쇠로 만든 어린갑(魚鱗甲. 스케일 아머)을 입었는데, 같은 시기에 동로마나 다른 아랍 병사들도 즐겨 입었습니다. 그가 갑옷 위에 걸친 두꺼운 외투는 방패를 대신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3. 베두인족 보조병, 10세기

이 베두인 부족민은 단순하고 다소 낡은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베두인족은 이제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군사적으로 미미한 역할만 맡았습니다. 그가 탄 말은 아마 가죽이나 밧줄로 만든 등자를 걸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4. 아랍 부족민, 10세기 후반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 부족들은 이슬람 이전 시대처럼 여전히 이웃을 습격했습니다. 시리아나 이집트에서 정치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가난했고, 그들의 전사들은 열악한 장비를 지녔습니다. 이 남자가 가진 자루가 긴 철퇴는 같은 시기의 이슬람 전사들이 즐겨 사용한 무기였습니다.

1. 사만 왕조의 기병, 10세기

이 말에서 내린 기병은 중앙아시아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가 걸친 사슬 갑옷은 아마도 안감이 있었을 것이며, 정강이에 두꺼운 가죽 각반을 착용했습니다.

2. 부와이흐 왕조의 기병, 10세기

이 남자는 서부 이란에 살았지만, 아랍계 출신입니다. 그는 여전히 아랍 전통 방식의 직도(곧게 뻗은 검)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가 탄 말에 걸쳐진 길고 두꺼운 안장은 이란 서부와 코카서스 산맥 지역에서 유행하던 양식이었습니다.

3. 다일라미스족 보병, 11세기 초

카스피해 남쪽의 다일람 출신의 창으로 무장한 보병은 당시 가장 성공적인 무슬림 보병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방어 장비는 주로 밝게 칠해진 큰 방패였으며, 주된 무기는 무거운 창이었습니다.

4. 가즈니 왕조의 근위병, 11세기 중반

가즈니 왕조의 궁궐을 지키는 군사들은 보석, 금박을 입힌 가죽 왕관과 벨트, 비단 튜닉을 착용하여 매우 화려하게 차려있었습니다.

1. 안달루시아(이슬람이 지배했던 스페인 지역) 보병, 10세기

이슬람이 지배했던 스페인의 군사 장비는 북아프리카보다 기독교 남부 유럽과 더 비슷했습니다. 이 남자는 소가죽과 펠트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타일은 이 남자가 전문 군인이 아니라, 변경 지역 주민이나 종교에 대한 열정으로 자원 봉사를 한 사람에 가까움을 보여줍니다.

2. 안달루시아 기병, 11세기

이 남자의 장비는 전적으로 유럽식입니다. 둥근 방패, 투구 주위의 손수건, 그리고 검의 손잡이만이 그가 안달루시아 출신임을 드러냅니다.

3. 베르베르-안달루시아 경기병, 10세기

많은 안달루시아 기병, 특히 경기병은 다른 지역에서 등자를 정식 장비로 채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등자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4. 안달루시아 보병 궁수, 11세기

바누 후드 왕조(11세기 중반부터 12세기까지 중세 스페인 북동부의 사라고사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이슬람 왕국) 치하의 사라고사는 베르베르족 알모하드 왕조의 점령을 피한 유일한 무슬림 스페인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유럽풍과 이슬람풍 양식이 뒤섞인 문화가 지속되었습니다.

1: 11세기 초, 파티마 왕조 칼리프의 근위병

이 남자는 아마도 다일라미스족(daylami 이란 북부의 산악민족) 출신일 것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의 전통인 두 개의 창을 들고 있으며, 제1차 십자군 전쟁 당시 노르만족이 중동에 가져가기 전부터 이미 중동에서 알려져 있던 연 모양의 방패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패는 아마도 비잔틴 제국에서 유래했을 것입니다.

2: 11세기 중엽, 사하라 부족 출신 기병

사하라 사막의 베르베르 유목민들(북아프리카의 원주민들로 유목 생활을 하는 부족들)은 북아프리카의 모든 무슬림 군대에서 복무했습니다. 얼굴을 가리는 짙은 파란색 터번 때문에 그들은 '베일을 쓴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오늘날 투아레그족(북아프리카의 유목민으로 흑인과 백인의 혼혈)의 문화적 조상이 되었습니다.

3: 11세기 파티마 왕조의 기병

북아프리카와 이집트에 정착한 아랍인들과 '아랍화된' 사람들은 파티마 왕조에 많은 기병을 제공했습니다. 이 남자의 철제 투구, 사슬 갑옷, 가죽 갑옷으로 구성된 장비는 중동의 전통적인 복장이지만, 겉옷의 재단 방식은 파티마 왕조 통치 하에서 부활한 옛 콥트식(이집트에 사는 기독교인들로 고대 이집트 문화 양식을 보존하고 있음) 복식을 보여줍니다.

4: 11세기 후반, 파티마 왕조의 도시 민병대

아흐다트(ahdath), 즉 시민 민병대는 이집트 본토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많은 도시에서 중요한 방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남자는 누비 보호 외투를 입고 있으며, 문헌에 묘사된 사바르바라(sabarbarah)로 추정되는 초기 형태의 글레이브(glaive: 동양의 언월도와 비슷한 서양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1. 함단 왕조의 기병, 10세기 후반

이 남자가 입은 미늘 갑옷은 같은 시기의 동로마 군사들도 즐겨 입었던 보호장비였습니다.

2.무슬림-아르메니아 변경의 전사, 10세기

타우루스 산맥(터키 남부의 산맥)의 강인한 농부들은 도끼를 무기로 선호했고, 다른 이슬람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누비 갑옷이나 펠트 갑옷을 입었습니다.

3. 말라티아(터키 동부의 도시) 국경 지역을 지키는 전사, 10세기 후반

이 남자는 정강이 보호대를 포함하여 펠트로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데, 그가 가진 검은 한쪽 면에만 날이 선 동로마 양식입니다.

4. 셀주크 투르크멘 기마 궁수, 11세기 후반

투르크 유목민들은 수백년 동안 동로마 변경을 약탈했지만, 셀주크 부족들은 아예 민족 전체가 동로마 영토인 소아시아 지역(현재 터키)으로 대이주를 하여 정착에 성공했습니다. 이 전사의 장비는 여전히 순수한 동부 투르크, 거의 몽골 양식이며 이슬람적 특징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갑옷을 입지 않았지만 그 대신 방패를 들었으며, 그의 무기는 매우 우수한 품질을 지녔으며, 안장 오른쪽 아래에 두 번째 검을 휴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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