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본에선 최근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데도 여성의 왕위 계승을 봉쇄하는 황실전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여성은 왕이 될 수 없지만 차라리 양자가 낳은 아들은 된다는 건데요.
정치권이 국민들의 뜻에 반해 끝내 남성 혈통 원칙을 고수하면서, 이에 대한 불만이 흔들리는 내각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신지영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스페인 펠리페 6세 국왕의 장녀이자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레오노르 공주는 최근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국왕이 될 사람은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직계 공주인 나루히토 일왕의 딸, 아이코 공주에겐 허용되지 않는 자격입니다.
최근 왕족 수 확보를 위한 황실전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왕 탄생은 불발.
대신 약 80년 전 평민이 된 구 왕가 가문에서 양자를 들이고 그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계승 자격을 주기로 했습니다.
현 일왕과는 무려 36촌이나 떨어진 남성의 아들이 직계 공주보다 더 왕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론조사에선 여성도 왕이 돼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넘겼지만 보수 정치권의 뜻은 완강했습니다.
[나카소네 히로후미/자민당 헌법개정실현본부장 (지난달 28일)]
"이건 인기투표(로 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계 혈통' 수호.
부계 남자에게만 왕위를 허용하는 것이 정통성의 원천이란 겁니다.
여왕을 허용한다면 자연히 모계인 여왕 자녀의 계승권에 대한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일본 총리 (지난 2월, 국회)]
"'황위'(왕위)가 여계로 계승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한편으론 전쟁 책임을 성찰해 온 일왕에 대한 극우세력의 견제, 그리고 뿌리 깊은 남성 우위의식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우경화의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신기영/오차노미즈여대 정치학 교수]
"빠르게 보수화될 거라고 저는 생각이 들어요. (황실전범 개정에) 굉장히 우익적인 보수의 의견이 관철됐기 때문에 그다음 수순으로 이제 헌법 개정으로 가겠죠."
여론을 거스른 후폭풍은 내각 지지율 급락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선 내각 출범 후 처음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지지율을 앞서는 '데드 크로스'가 발생했습니다.
여론의 추이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우경화된 정책을 잇달아 밀어붙이고 있는 집권여당과 정권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신지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