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대림자동차가 승용차를 만들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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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대림자동차가 승용차를 만들었다면?

최고관리자 0 0 07.07 23:44

대림 겔랑 (1982~1998) 이야기

'16년간 생산된 사골모델이자 마지막 국산 후륜구동 소형차, 그리고 대림의 처음이자 마지막 승용차'

1장: 망작의 부활 (1978~1981)

1978년, 대림공업(현 DL모터스)이 설립되며 창원 공장에서 오토바이 생산을 시작합니다. 대림은 오토바이를 넘어 종합 자동차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원대한 꿈을 품었지만, 백지상태에서 고유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대림의 눈에 띈 것은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의 전신) 부평공장이었습니다. 당시 새한은 비인기 차종의 생산라인 정리를 고심하고 있었고, 대림은 이를 기회로 여겼습니다. 대림이 지목한 모델은 1977년 단종된 1500cc급 세단 '카미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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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모델 카미나의 모습. 카미나는 호주 홀덴 차량을 기반으로 한 모델로, 당시 차급은 오늘날의 준중형에 가까운 소형차였습니다. 그러나 카미나는 차체 크기에 비해 턱없이 낮은 출력, 취약한 험로 주행 능력, 엔진 내구성 문제 등으로 인해 현대 포니와 기아 브리사에 완패했습니다. 총 생산대수 992대라는 치욕적인 기록을 남긴 채 단종된, 그야말로 '역대급 망작'이었습니다.

새한자동차는 골칫덩이였던 카미나 생산라인을 대림에 즉각 낙찰시켰습니다. 망작을 떠안은 대림은 차의 이름을 겔랑 (Guerlain) 으로 명명하고, 카미나를 철저히 분해하여 내구성과 품질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마땅한 엔진 공급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림의 오토바이 기술 제휴사였던 야마하는 자동차 엔진 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엔진이 없는 차체만 완공된 채 겔랑은 창고에 묵혀두게 됩니다.

2장: 우연과 필연, 그리고 탄생 (1981~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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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신군부의 '2.28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합니다. 이 조치로 인해 기아산업(현 기아)은 강제로 혼다와 제휴하던 오토바이 사업부를 대림에 매각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대림은 혼다와의 기술 제휴를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되는 거대한 행운을 얻습니다.

대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시 전 세계적으로 내구성이 입증된 혼다 시빅의 엔진을 공급받기로 합니다. 비록 고성능 엔진은 아니었지만, 대림은 이 소형 엔진을 후륜구동 방식에 맞춰 세로배치하고, 실내 디자인을 당시 수준에 맞게 소폭 개선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2년 1월, 대림자동차의 첫 승용차 '겔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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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영광과 위기, 그리고 변신 (1982~1992)

1982년 출시된 초대 겔랑은 카미나의 유산인 튼튼한 차체(개선됨)와 혼다의 고성능 엔진이 결합되어 초기 시장에서 예상외의 선전을 펼쳤습니다. 특히 전륜구동이 대세가 되기 직전, 마지막 후륜구동 소형 세단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포니 2와 경쟁했습니다.

그러나 1985년 현대 포니엑셀을 시작으로 국산차 시장은 빠르게 전륜구동 시대로 변모했습니다. 전륜구동 차량의 넓은 실내 공간과 높은 연비는 후륜구동인 겔랑을 구시대의 유물로 몰아갔습니다. 대림은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88년 서울 올림픽 시기에 맞춰 1987년 1월 대규모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을 선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겔랑 II'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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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랑 II는 카미나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전후면 디자인을 완전히 일신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트렌드에 맞춰 크롬 대신 플라스틱 범퍼를 적용하여 에어로다이내믹을 강조했고, 헤드램프도 사각형으로 변경했습니다. 특히 1992년까지는 혼다와의 기술 제휴 관계를 보여주는 'DMC HONDA' 레터링이 전면 그릴 상단에 유지되었습니다.

겔랑 II는 혼다 엔진의 내구성을 신뢰하는 고정 수요층과 "소형차도 후륜구동이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으며 생명을 연장했습니다.

4장: 사골의 끝, 마지막 불꽃 (1992~1998)


1990년대에 접어들며 국산차 시장은 현대 엑센트, 기아 아벨라 등 완전한 3세대 전륜구동 소형차들의 전성시대가 되었습니다.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겔랑은 더 이상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 경쟁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림은 이미 오토바이 사업에 집중하고 있었고, 새로운 승용차 개발 계획은 없었습니다. 창원 공장의 겔랑 생산라인을 멈추기엔 유휴 인력 문제가 걸려 있었기에, 대림은 겔랑을 저가형 생활차 및 택시 수요로 돌려 '사골'처럼 우려먹기로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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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형 대림 겔랑의 모습입니다. 

1970년대 설계된 카미나의 차체는 이미 시대에 뒤처졌으며, 겉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겔랑은 여전히 창원 공장의 가동을 유지하는 마지막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이 마지막 시기의 겔랑은 주로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촌부들의 첫 차나 영세 자영업자의 배달용 차량, 그리고 도심의 골목길을 누비는 막차 택시로 애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강화되는 환경 규제와 안전 기준, 그리고 대림산업의 구조조정 압박 속에 겔랑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12월, 대림자동차는 겔랑의 생산라인을 완전히 멈추며 승용차 사업에서 공식적으로 철수합니다. 이로써 20년간 대한민국 도로를 지켰던 '마지막 국산 후륜구동 소형차'이자 '대림의 처음이자 마지막 승용차'인 겔랑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망작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골로 장수한, 겔랑의 파란만장한 20년 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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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랑 중형택시 광고 (1989)

1.5L인 자가용 사양과 다르게 법상 중형택시로 분류되기 위해 배기량을 1.6L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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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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