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무리한 궁궐 공사는 비선 실세 점쟁이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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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무리한 궁궐 공사는 비선 실세 점쟁이 때문?

최고관리자 0 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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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경복궁의 10배가 넘는 궁궐 공사를 하면서

나라를 망치고 결국 광해군 자신도 망친 결과를 가진다.

그럼 왜 광해군은 궁궐 공사에 미쳐 있었을까

선조가 임진왜란 이후 궁궐이 불에 타

선조 자신은 성종의 형 월산 대군의 집을 거처로 사용했음

그곳이 경운궁임.그래도 정식 궁궐이 있어야 해서

창덕궁 공사를 했고 선조 자신을 완공을 못 보고

광해군 2년에 창덕궁이 완성이 됨.

그럼 광해군은 창덕궁에서 살았을 까 아님

광해군은 완공 된 창덕궁을 보면 이런 말을 함.

광해군일기[중초본]25권, 광해 2년 2월 13일 기미 7/7 기사 /

1610년 명 만력(萬曆) 38년

[한문 원문]

今慈殿當居昌慶宮, 昌德宮雖復舊制, 而中廊複閣,

局蹐廕沈, 無一處豁達流通者。

寢殿不遠宮人所處, 雜喧之聲, 相聞。

[국역]

"지금 자전(慈殿)께서는 마땅히 창경궁에 사셔야 하고,

창덕궁은 전우(殿宇)를 비록 그전 제도대로 회복하였으나

중랑(中廊)과 복각(複閣)이 답답하고

음침해서 한 곳도 환하게 소통된 곳이 없으며,

침전(寢殿)은 궁인들이 드는 곳과 멀지 않아서

잡다하게 떠드는 소리가 서로 들린다."

[한문 원문]

予本來有心病, 最厭人迹煩擾之聲,

而居處必取疏明開豁之地。

身安無病之時, 雖處寢殿, 容或堪過,

心身不安之時, 更無閑靜養病之所, 故新冊房,

因其舊基, 使之稍加寬敝造成者, 蓋欲爲調病之別堂耳。

[국역]

내가 본래 심병(마음의 병)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과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가장 싫어하므로,

거처하는 곳은 반드시 탁 트이고 밝으며

활짝 열린 곳을 택한다.

몸이 편안하고 병이 없을 때에는

비록 침전(寢殿)에 처하더라도

어찌어찌 견뎌낼 수 있겠지만,

심신이 불안할 때에는 더더욱 한가롭고 조용하게

요양할 만한 장소가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책방(新冊房)을,

그 옛터에 따라 조금 더 넓게 지은 것은

대개 병을 치료하기 위한

별당(別堂)으로 삼고자 해서였다.

광해군 본인은 心病이 있다 말한다.

'심병(心病) '마음의 병'또는 심장 질환 일 수 있다.

여기서 부터 문제의 현실이 시작된다.

결국 광해군은 완공된 창덕궁은 답답해서

추가로 궁궐 하나 더 건설을 말하고

창경궁 신축 공사를 말한다. 또한,

지금 자전(慈殿, 인목대비)께서는

마땅히 창경궁에 사셔야 하고

창경궁 공사도 지시한다.

『광해군일기』 중초본 25권, 광해 2년(1610년) 2월 13일

[한문 원문]

"今慈殿當居昌慶宮, 昌德宮雖復舊制, 而中廊複閣,

局蹐廕沈, 無一處豁達流通者。

寢殿不遠宮人所處, 雜喧之聲, 相聞。

予欲於昌慶宮舊基, 拓建新冊房, 以爲視事調섭之所。

營建廳其速卽起功

[국역]"지금 자전(慈殿, 인목대비)께서는

마땅히 창경궁(昌慶宮)에 사셔야 하고,

창덕궁(昌德宮)은 전우(殿宇)를

비록 그전 제도대로 회복하였으나

중랑(中廊)과 복각(複閣)이 답답하고

음침해서 한 곳도 환하게 소통된 곳이 없으며,

침전(寢殿)은 궁인(宮人)들이 드는 곳과

멀지 않아서 잡다하게 떠드는 소리가 서로 들린다.

내가 창경궁의 옛터에다

새 책방(新冊房)을 넓게 지어 정사를 보고

몸을 요양하는 장소로 삼고자 하니,

영건청(營建廳)은 신속하게 공사를 시작하라."

영건청(營建廳): 조선 시대에 궁궐이나

나라의 큰 건물을 짓거나 고칠 때

임시로 설치하던 관청

조선 전기는 경복궁(법궁) - 창덕궁(이궁)의 양궐 체제

창경궁은 애초에

성종이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지은

왕실 어른들의 거처였습니다.

그러니 세 궁궐 공사는 광해군에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신하들도 크게 반대 안 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영화 드라마로 역사는 배운

일베 기생충들은 왕이면 절대 권력을 가졌다

생각해서 조선도 그런 나라라고 생각 하는 데

절대 아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현대로 가정하면

입헌군주제에 가까울 정도로

왕권과 신권이

정교한 견제와 균형을 갖춘 진보적인 국가였다.

조선은 《경국대전(經國大典)》이라는

성문 헌법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철저한 법치국가다.

왕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명령(전지)보다

국가의 근본 법전이 우위에 있었다.

만약 왕이 법에 어긋나는 무리한 명령을 내리면,

신하들은 승정원(비서실)에서

명령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거부(봉박)할 수 있었다.

왕을 감시하고 가르친 신하들 (삼사 체제)

조선에는 왕의 권력을 독점을 막는

막강한 언론 기관인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가 있었다.

사간원: 왕이 잘못된 정치를 하면

목숨을 걸고 직접 비판(간쟁)했다.

사헌부: 백관의 비리를 감시하는 동시에

왕의 부당한 인사 조치에 제동을 걸었다.

왕은 매일 서너 차례씩 신하들과

유교 경전 및 정책을 토론하는

경연(經筵)에 참석해야 했다.

모든 행적이 기록되는 투명성 (실록과 사관)

왕의 바로 옆에는 항상 사관(史官)이 붙어 다녔다.

왕은 이 기록을 절대 열어볼 수 없었다.

후대의 평가를 두려워하게 만듦으로써

왕이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묶어둔 천재적인 시스템이었다.

(가끔 예외도 있었음)

조선이 일본 식민지 되는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조선을 비난하고

고려가 조선보다 좋았다고 찔롤염뿅하는

더러운 기생충 일베충들이 있는 데

조선은 고려보다 매우 발전된 체계를 가진 나라다.

« 조선이 싫으면 한글 자체를 사용하지 마 »

이제부터

광해군의 몰락의 시작 원인이 되는

궁궐 공사 왜 그렇게 했는 지 역사를 따라가 봅시다.

조선 광해군 4년(1612년)

풍수지리가 이의신(李懿信)의 교하 천도 상소

광해군 검토 지시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4년 9월 14일)

[한문 원문]

政院啓曰: "昨者引儀李懿信, 投疏以爲:

'都城旺氣已歇, 當卜新都於交河縣, 居中御물。

' 語涉怪誕, 揆以體統, 似難聽納。

而聖意以爲: '事係宗社, 降下禮曹, 令時原任大臣、

禮官、術관, 詳行相度, 竝與懿信疏, 議處。' ...

傳曰: '宗社大計, 禮曹其速令本曹, 依啓字施行。

[국역]

승정원(政院)이 아뢰기를,

"어제 인의(引儀) 이의신(李懿信)이 상소를 올려

'도성(한양)의 왕기가 이미 다했으니,

마땅히 교하현(交河縣)에 새 도읍을 정하여

천하를 다스려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이 괴이하고 황탄하여 체통으로 헤아려 보건대

들어주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성상의 뜻(聖意)은

'일이 종묘사직에 관계되니 예조(禮曹)에 내려보내어,

시임·원임 대신과 예관(禮官), 술관(術官)들로 하여금

상세히 가서 살펴보고

이의신의 상소와 함께

논의하여 처리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나라의 수도 자체를 이전 하자는 논의를 하라

광해군은 지시를 한다 .당연히 신하들은 반대한다.

그리고 논란이 계속 되고 이의신등을 처벌하라고 하자

광해군은 이의신은 죄가 없다 말한다.

광해군일기[중초본]81권,

광해 6년 8월 27일 정미 3/4 기사 / 1614년 명 만력(萬曆) 42년

양사가 이의신·송흥주에게 죄줄 것과

정온·송흥주의 소를 소각할 것을 청하다.

한문 원문

(漢文 原文)○兩司連啓, 請罪李懿信、宋興周等事……

答曰: "懿信無可治之罪矣。他餘事, 依啓。"

국역 (國譯)

양사가 연이어 계사를 올려

이의신과 송흥주 등에게 죄를 줄 것을 청하니……

왕이 답하기를,

"이의신은 다스릴 만한 죄가 없다.

지금 조선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임진왜란 끝난지도 얼마 안 되었고

북방의 후금은 발광을 해서

전쟁 위험이 있는 데

나라의 수도를 이전한다는 것은

궁궐 공사에 비하면 차원이 다른 큰일이다.

그것도 풍수지리가 때문에 ......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이상한 짓을 시작한 것이다.

심병 .... 때문일까...

1612년~1613년 사이에

풍수지리관 이의신의 상소 이후,

비변사 등이 파주 교하의 지형을 살피는 등

추진하려 했으나 조정 대신들과

삼사의 끈질긴 반대로 천도는 사실상 무산되었다.

광해군이 쉽게 포기 한 것이 아니다.

『광해군일기』 광해 4년 11월 20일]

한문 원문:

傳于備邊司曰: "交河基址, 營建廳及術官等,

詳加相度, 作圖以進。

"국역:

비변사에 전교하였다.

"교하(交河)의 기지(터)를 영건청과

술관(지관)들로 하여금 상세히 가서 살펴보고(相度),

도면(지형도)을 그려서 바치게 하라."

"천도가 아니라 별궁을 짓는 것이다" 말 바꾸기

(1613년 1월)

[『광해군일기』 광해 5년 1월 3일]

한문 원문: 傳於備邊司曰:

"自古帝王, 必建別城邑, 以備不虞, 非謂遷都也。

交河前臨江華, 形勢甚奇。...

依禿城例, 築城建宮, 欲時時巡幸。

"국역:

비변사에 전교하였다.

"예로부터 제왕들은 반드시

별도의 성읍을 건설하여 뜻밖의 일에 대비하였으니,

도읍을 옮기는 것(遷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하(交河)는 앞이 강화도와 마주하고 있어

형세가 매우 기이하다. …

독성산성의 예에 따라 성을 쌓고

궁을 지어놓고 내가 때때로 순행하고 싶다."

광해군의 교하 천도 의지(1613년 5월)

대신들의 반대 상소가

수십 차례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1613년 5월에 이의신을 비롯한

풍수지리관들을 기어코 파주 교하로 출발시켜

땅을 측량하고 평가하게 만들었다.

『광해군일기』 중초본 66권, 광해 5년(1613년) 5월 20일

[한문 원문]"命術官李懿信等, 往相交河縣地。"

[국역]"술관(術官) 이의신(李懿信) 등에게 명하여

교하현(交河縣)의 땅을 가서 살펴보도록(相) 하였다."

교한 천도를 포기한 광해군은

1616년(광해군 8년) 3월: 승려이자

풍수지리가인 성지(性智)가

"인왕산 아래에 왕기(王氣)가 있어

궁궐을 지으면 태평성대가 온다"고 하자,

인경궁 터를 보게 하고 이듬해(1617년)

본격적인 대규모 공사를 명했다.

<<1616년(조선 광해군 8년)은

누르하치가 흩어져 있던 여진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후금(後金)'을 건국한 해>>

선조를 맹 비난하는 자들은

일본 침략 대비를 안 했다 하는 데

선조는 대비를 했다.최소한 궁궐 공사는 안 하고

성곽 공사 쯤은 했다.

어째든 광해군의 인경궁 공사를

영건도감과 조정 신하들이 흉년과 재정난을 이유로

인경궁 역사를 중단할 것을 청하자,

광해군은 공사를 강행한다.

1616년(광해군 8년) 6월 15일 —

지기(地氣)론을 앞세워 공사를 옹호하는 전교

한문 원문 (漢文 原文)傳曰:

"都城地氣, 前日術官已言其衰矣, 故曾의遷都於交河,

而朝論不從, 遂至中지。今玆仁王山下, 乃國中第一名疆,

術家皆言建闕於此, 則可以壓凶거而補王氣。

國家連遭逆變, 大內怪異日滋, 皆由地氣之不旺也。

若不亟建新闕以爲避舍之所, 則宗社之憂, 殆不可言。

今雖財力殫竭, 民力傷疲, 然此乃安社稷、奠邦本之大計,

豈可以區區小費, 遂廢營建之重務乎? 都감其體稟予意,

督躬工役, 勿爲搖動。"

국역 (國譯)전교하였다.

"도성의 지기(地氣)에 대해서는

전날에 술관(이의신 등)이 이미 그 쇠함을 말하였으므로,

일찍이 교하(交河)로 천도하려고 의논했으나

조정의 논의가 따르지 않아 드디어 중지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여기 인왕산(仁王山) 아래는

바로 나라 안에서 첫째가는 명당(名疆)이니,

술가(術家)들이 모두 말하기를

여기에 궁궐을 지으면 흉한 재앙을 누르고

왕기(旺氣)를 보충할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연달아 역모의 변고를 겪고 대내(大內, 창덕궁 등)에

괴이한 일이 날로 늘어나는 것은

모두 지기가 왕성하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만약 급히 새 궁궐을 지어

피처(避舍, 재앙을 피하는 거처)로 삼지 않는다면

종묘사직의 근심을 가히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비록 재력이 고갈되고

민력이 지치고 피폐해졌으나,

이는 사직을 안정시키고 나라의 근본을 정하는 큰 계책이다.

어찌 구구한 적은 비용(민생의 고통) 때문에

마땅히 영건해야 할 중대한 임무를 마침내 폐할 수 있겠는가?

영건도감은 나의 뜻을 체득하여 공사를 독려하고,

흔들리지 말라."

« 자 이쯤에서 광해군 영화 드라마 만든 그 많은 것들 중에

이런 내용 본 적 있나요.이것이 바로 식민 사관입니다.

일본이 광해군 우상화 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친일부역민족반역매국노들이 사람들에게 감춘 것이죠.

얼마 전 영화에서 선조가 궁궐 공사에 미친 사람 처럼 나오는데

그게 광해군의 모습이에요.영화 제작자는 정말 몰랐을까요»

그리고 또 삽질이 시작 됩니다.

풍수가 김일룡은 현재의

서울 종로구 신문로 일대(당시 정원군의 집터)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상소를 올려

광해군이 경덕궁(훗날 경희궁)을 신축합니다.

근데 그 집 터는

정원군(인조의 아버지)의 사저를 강탈한 뒤

그 자리에 궁궐을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쫓겨난 정원군의 아들인

능창군이 역모로 몰려 죽게 됩니다.

《광해군일기》 정초본 116권,

광해 9년(1617년) 6월 11일 갑진 1번째 기사

조선왕조실록 원문

議建新宮于塞門洞。

【性智已令建新闕于仁王山下,

術人金馹龍又請建離宮于塞門洞, 卽定遠君舊宅也。

王聞其處有王氣, 遂奪其宅, 納之官家, 馹龍迎合王意, 有此議。】

(현대어 번역)새 궁궐을

새문동(塞門洞)에다 건립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였다.

【성지(性智)가 이미 인왕산 아래에다 신궐을 짓게 하고,

술인(術人) 김일룡(金馹龍)이 또 이궁(離宮)을

새문동에다 건립하기를 청하였는데,

바로 정원군(定遠君)의 옛집이다.

왕이 그곳에 왕기(王氣)가 있음을 듣고

드디어 그 집을 빼앗아 관가로 들였는데,

김일룡이 왕의 뜻에 영합하여

이 의논이 있게 된 것이다.】

경복궁 규모는 755칸입니다.

인경궁과 경덕궁 합친 규모가 7000천칸입니다.

이래서 광해군이 궁궐 공사에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광해군 2년에 심병이 있다고 본인이 말했는 데

정말 마음의 병이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인경궁과 경덕궁과 함께 또 궁궐 공사가 있습니다.

자수궁입니다.

광해군일기 중초본 116권, 광해 9년 6월 12일

한문 원문

傳曰: "仁王山下新闕, 依施文龍、

性智之言爲之, 西別宮, 依金一龍所言爲之, 言于都監."

번역

전교하였다."인왕산 아래의 신궐(인경궁)은

시문룡과 성지의 말에 따라 짓고,

서별궁(자수궁/경덕궁 부지)은

김일룡이 말한 바에 따라 지으라고

영건도감에 말하라."

궁궐이 왕권 강화라는 것에 대해 의견은 없으나

저런식의 궁궐 공사는 나라 망하게 하는 것이다.

임진왜란 직후 가장 시급한 것은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파괴된 생산력의 복구.

하지만 광해군은 이를 외면하고

동시에 너무 많은 궁궐을 지었다.

창덕궁, 창경궁, 경덕궁(경희궁),

인경궁, 자수궁 등 무려 5~6개의

대형 궁궐 공사가 한꺼번에 진행되었다.

진짜 문제는 돈이다.무슨 돈으로 저런 공사를 했을까

매관매직이다.

돈을 바치거나 궁궐 자재(기와, 목재 등)를 바치면

관직을 주는 '납속조치'가 남발되어

관리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

무거운 죄를 지었더라도 궁궐 공사에

돈이나 물품을 내면 죄를 사면해 주어

법질서가 무너졌다.

납속책(상업적 대가로 관직이나 신분 등을 파는 제도)과

공명첩(이름이 적히지 않은 임명장)을 남발

죄인들에게 은(銀)을 받고 사면의 길을 열어준 기록

광해군일기[정초본] 174권,

광해 14년 2월 2일 무진 4번째 기사

한문 원문

傳曰: "令納銀贖罪及授職, 以開其路。"

번역

전교하였다. "은(銀)을 바치고

죄를 속죄(사면)받거나 관직을 제수받게 하여

그 길을 열어주도록 하라."

궁궐 공사용 재목과 물자를 위해 온갖

공명첩 발행을 지시한 기록

광해군일기[정초본] 153권,

광해 12년 6월 7일 계축 4번째 기사

한문 원문

傳曰: "其令傳ㆍ營建都監, ……

當上三品實職以下空名帖,

及免鄕帖ㆍ免役帖ㆍ許通帖等, 多數差送于勤敏文官,

速爲募集以用。

번역

전교하였다. "전람도감과 영건도감으로 하여금 ……

당상 3품 실직(實職) 이하의 공명첩(空名帖) 및

면향첩(고향의 역을 면제함)·면역첩(군역 등을 면제함)·

허통첩(서얼의 신분 제한을 풀어줌) 등을

부지런하고 민첩한 문관들에게

넉넉히 주어 보내서,

속히 (물자를) 모집해 쓰도록 하라."

가을이 되었는데도 공명첩이 안 내려왔다며

관리를 문책한 기록

광해군일기[중초본] 155권,

광해 12년 8월 7일 계미 3번째 기사

광해군이 궁궐 공사에 마음이 급해져,

돈을 걷기 위한 공명첩 발급을 지연시킨

해당 부서의 실무 관리(색낭청)를

처벌(추고)하라고 화를 내는 장면.

한문 원문

傳曰: "秋期已迫, 而空名帖猶不爲開送云, 該曹色郞廳推考。

번역

전교하였다.

"가을철(공사 적기)이 이미 다가왔는데도,

공명첩(空名帖)을 아직도 만들어 보내지 않았다고 하니,

해당 조(曹)의 색낭청(실무 담당 관리)을

추고(잘못을 조사하여 책망함)하라."

호조 판서가 공명첩으로 은(銀)을 거두자고

공식 제안한 기록

광해군일기[정초본] 141권,

광해 11년 6월 13일 갑자 1번째 기사

재정을 총괄하는 호조 판서 김신국이

궁궐 공사와 국가 안보 비용이 바닥나자,

공식적으로 공명첩을 활용하여

은자를 거두어들이자고

왕에게 청하는 대목.

한문 원문戶曹判書金禔國,

請以空名帖及告身應募, 收取銀子。

번역

호조 판서 김신국이 공명첩(空名帖)과

고신(관직 임명장)으로 사람들을

응모하게 하여 은자(은화)를 거둘 것을 청하였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세자 시절에는 분명 휼륭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풍수지리가들 말 듣고 궁궐 공사를 했는지

아니면

광해군이 풍수지리가들

이용해서 궁궐 공사를 했는 지 모르지만

전란 극복하고 민생을 안정시키고

법치를 세우고 국방을 강화했어야 하는 데

모두 못 했다.

그래서 왕이 아니라 광해군인 것이다.

광해군의 우상화는 일본 식민지 식민 사관이다.

이나바 이와키치(稲葉岩吉, 1876~1940)는

일제강점기 당시 활동하며

한국사 왜곡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일본의 관변·식민사학자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사편수회 수사관(修史官)으로 근무하며

식민사학의 핵심 논리인

'만선사관(滿鮮史觀)'과

'타율성론'을 정립하고 확산시킴

1908~1914년 만철조사실에서 만주사 연구

1915~1922년 일본군 육군참모본부

육군대학에서 동양사 강의

1922~1937년 조선사 편수회 간사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 정당성을 역사로 편수함)

저술사

<< 광해군 시대의 만선관계>>

핵심 내용

"명의 원병 요청을 거부하고

후금과 화친하려고 했던

광해군의 외교는

현실적이고 백성들에게 은혜로운 정책이다"

..............................................................................................

일본인 이나바 이와키치의 목적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정당성을 위해

연구하고 허위 조작 노력했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과거 광해군 때

조선인들이 무시한 청나라에 패 했다

그러니 광해군을 본 받아서

중립 실리 외교로 일본을 받들어야 한다.

광해군을 몰아 낸 역사적 잘못을 기억하고

일본 제국과 협력해야 된다"

이렇게 식민사관을 세뇌시켰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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