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그냥 농민 출신 황제인 것 처럼 보이지만
기록상으로 보면 사실 초인적인 황제였습니다
무력으로 천하 통일만 한 것이 아니라
내정도 엄청 잘하는 유능한 황제였던 것이죠
원나라 내전으로 폐허가 된 중원을 복구하기 위해
부패한 관료들을 잡아 족치고 관료제를 정비하고
농업 생산을 부흥 시키고 반란을 막고 등등
이걸 황제가 모두 직접 다 했습니다.
명나라는 황제의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재상 제도를 없애 버리고
6부를 모두 황제 직속으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나라의 모든 크고 작은 업무를
모두 황제가 직접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제도를 만든 주원장은
하루 10시간 넘게 상소를 보며 일을 하였고
죽는 그 순간까지 살인적인 업무를 했습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죠
주원장에게 상소문이 하나 올라왔는데
상소문의 전체 16500자 글자 중에
황제를 찬양하는 글자가 16000자고
실제 내용은 500자 뿐입니다.
주원장이 읽다가 너무 빡이쳐서
상소문 쓴 신하를 찾아 두들겨 팼습니다
하지만 그 나머지 500자의 건의는 훌륭했기에
상소 내용은 그대로 수용해 집행했습니다
황제가 이토록 근면 성실 하니
신하들 또한 근면 성실해야 합니다.
여기에 또 추가되는 것이 청렴함이죠
농민, 거지 출신 황제 주원장은
어려서 형제들이 굶어 죽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백성의 가난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고
황제가 되었음에도 죽는 그 순간까지 절약하며 살았습니다
때문에 명나라 관료들은 역대 중국 왕조 중에
가장 적은 녹봉을 받았고 가장 많이 일하며
또 청렴하고 하게 일 할 것을 강요 받았습니다
주원장은 원나라 시절 부패한 관료를 증오했기에
이걸 지키지 않느면 전부 죽여 버렸으니
주원장 치세에는 당연히 준수하고 태평성세를 이뤘습니다
문제는 주원장이 죽은 다음에 벌어집니다.
주원장 사후 정난의 변으로 영락제가 황제가 되었고
수도를 먼 변방인 북경으로 천도를 하였습니다.
그럼 중앙에서 관직 생활을 하려면
중원 각지의 선비들이 머나먼 북경으로 와서 살아야 하는데
조정에서 주는 녹봉으로는 북경 생활을 할 수가 없죠
권력을 가진 고위 관료가 녹봉이 적어 생활고에 시달린다?
처음에는 청렴함으로 버틸 수 있지만
알아서 아부하는 작은 선물, 작은 호의가 지속 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녹봉이 아닌 다른 재물이 쌓이다 보면 부패가 발생합니다
주원장이 생존하던 시절에는 함부로 다른 재물을 받으면
바로 살 가죽이 벗겨지거나 삶아 죽였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지켰겠지만
이것이 수십 년 백 년 지속되다 보니
매번 관료들을 학살 할 수가 없기에 봐주게 되고
이게 지속되다 보니 관행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레 명나라 관료들의 부정 부패가
오랜 전통이자 관행으로 뿌리 박혀 정착하게 됩니다.
명나라의 청렴 강조가 이렇게 무너졌다면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황제의 근면함에 있었습니다
개국 군주인 주원장과 그의 아들로 영명한 군주였던 영락제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성실함으로 이걸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흘러 평범한 황제가 즉위 하면서 부터입니다
명나라는 태상적으로 초인적인 황제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업무량을 황제에게 강요했기 때문에
영민한 군주가 아닌 평범한 수준의 군주가 즉위하는 순간
질려서 황제가 업무를 방기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후대의 황제들은 집중 된 엄청난 업무량을 처리하고자
황제의 업무를 도와주는 일종의 비서실을 만들었는데
사실상 이들이 재상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이 조차 업무량과 능력이 감당이 안되었기에
환관들을 교육시켜 황제를 보좌하게 하였죠
교육 받은 환관들이 사실상 황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국 재상과 환관이 서로 권력 다툼을 하는
명나라 특유의 기괴한 붕당 정치가 발생합니다
또 명나라에 유독 멍청한 황제가 많았던 이유죠
이런 명나라의 시스템적 모순이 천천히 쌓이며
결정타를 날린 사건이 황제 만력제의 잠적입니다
만력제를 교육한 스승으로
항시 근면 성실할 것을 가르쳤던 신하이며
만력제가 그토록 존경했던 재상 장거정이 죽자
그에 대한 탄핵안이 쏟아 졌는데
부정 부패와 재산 축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부정 축재가 드러납니다.
만력제가 받은 배신감과 충격은 말할 수 없었고
조정에 나와 근면 성실과 청렴을 떠드는
명나라 관료들 모두가 역겨운 위선자로 보여지자
황제는 조정을 포기하고 잠적해 버립니다.
그게 장장 40년 동안입니다.
명나라에서 아무리 부정부패가 유행을 하고
그게 관료들에게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고 하나
그나마 제국을 지탱하고 유지할 수 있던 것은
유학자 출신 관료들이 가진 마지막 보루인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가 있기 때문이었죠
명나라도 충효를 이상으로 삼는 유교 국가였기에
역사에 청렴하고 충성스런 신하로 기록되길 바랬고
관직 생활을 하며 존경 받는 신하가 되길 바랬습니다
이것을 위해선 드러낼 대상이 필요합니다
신하가 황제에게 목숨을 걸고 간언 하여
그 충성스러움을 증명 할 수 있거나
자신이 얼마나 모범적이며 청렴한 신하인지
황제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역사에 기록이 되고 알려집니다.
근데 그 마지막 남은 희망인 관리로써 명예조차
그것을 유지하게 할 대상인 황제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게 장장 40년 지속되다 보니
명나라 관리들은 황제가 누구인지 알지 못 하고
누구에 충성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으며
무엇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게 됩니다.
이제 관리로써 이뤄야 할 그 어떤 사명감 조차 없이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은 부정부패만 남게 됩니다.
말 그대로 부정 부패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며
백성을 착취 하고 권력만 휘두르는 기관이 된 것입니다
무려 40년을 칩거한 만력제가 죽고
그나마 정상인 황제 숭정제가 즉위했음에도
이미 망가진 명나라의 국가 시스템은
다시는 복구를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됩니다.
전국 각지에 파견 된 명나라 지방 관료들이
수십 년에 걸쳐 기계적인 부패와 착취를 하자
반작용으로 전국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있는
이미 시스템이 완전히 명나라 조정은
재정을 아무리 개혁해도 항상 재정이 모자르고
군대를 아무리 개혁해도 항상 오합지졸이 됩니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 반군을 아무리 진압해 보았자
마치 마른 풀 숲에서 꺼진 불씨가 살아나듯
다시 반란은 들풀처럼 크게 번졌습니다
명나라 황제가 폭군이었던 것도 아니고
변방 오랑케의 침략이 심각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명나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멸망했습니다.
끝.
* 본문 내용은
"1587년 만력 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레이황" 책의 내용을 제 나름 정리한 것입니다.
1587년은 스페인 무적 함대가 영국에게 격파 당하며 카톨릭 패권이 개신교 패권으로 넘어간 년도입니다
이 유명한 년도를 명나라에 적용시켜 만력제가 칩거에 들어가는 사건을 중심으로
겉으로는 아무일도 없었지만 사실 그것이 명나라가 망하는 기점이 되었다고 흥미롭게 다룬책입니다.
명나라 역사에 관심 있으시면 일독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