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로 역사를 배우고
친일민족반역자들이 광해군을 중립외교 희생양으로
구한말 중국과 일본 상황에 중립 외교로 포장을 해서
우상화 하는 데
사실상 병자호란 책임은 광해군에 있음.
가장 큰 실정은 궁궐 공사임.
궁궐 공사를 벌거 아닌 것 처럼 생각 하는 데
흥선 대원군 경북궁 공사로
많은 비난을 받는 거 생각 하고 보면 그 수준은 새발의 피임
광해군 8년에 시작한 궁궐 공사가 진짜 문제임
경덕궁(경희궁),인경궁,자수궁
경북궁 규모가 755칸임
근데 인경궁 +경덕궁 = 7,000칸임 거기에 자수궁
경북궁 규모의 10배가 넘음.
이 공사를 광해군 8년에 동시 시작한 것임.
광해군 궁궐 공사
임진왜란 이후 파탄 난 민생과
국가 재정을 더욱 악화시킴.
광해군은 재위 15년 동안
무려 5개의 궁궐을 동시에 중건하거나
신축함.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부패와 수탈의 만연함
관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매관매직과
돈을 받고 신분증을 주는 공명첩이 남발되었음.
무리한 세금 징수로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정치적 고립과 폐위:
대간(삼사)과 신하들이 "민생이 도탄에 빠졌다"며
공사 중단을 처절하게 간청했으나
이를 완전히 묵살했습니다.
결국 내치 실패의 핵심 원인이 되어
인조반정으로 실각하는 비극
광해군은
국방비 역시 궁궐 공사에 사용해서 파병하는 병사 식량도 안 줌
국방비를 빼돌려 궁궐 공사에 투입
광해군은 국경을 방어하고
군대를 유지해야 할
둔전(군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의 수입과
군량미를 궁궐 공사비로 전용함.
이것 때문에
1619년, 명나라의 압박으로
강홍립이 이끄는 1만 3천여 명의 조선군이
후금(청나라) 정벌을 위해 파병되었을 때
(심하 전역 / 사르후 전투).
당시 조선군의 보급 상황은
조정에서 제대로 된 군량미를 보급하지 못함.
결국 이것 때문에 파병된 조선군이 명군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게 되어 작전권이 넘어 감.
명나라 황제가 준 위로금까지 궁궐 공사에 전용
1619년 파병때 사르후 전투로 수 많은 조선병이 죽음
이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명나라 만력제 황제가
전사자와 부상자 가족들을 위로하라며
은 1만 냥을 조선 조정에 보냄.
그러나 광해군은
이 위로금마저도 유가족에게 주지 않고
궁궐 기와를 올리고
자재를 사는 공사비로 전용함.
이짓을 한 것을 광해군의 중립외교라고
친일부역매국노 사학자들이 포장 함.
일부에서는 광해군 왕권이 약해서
저짓을 했다고 하는 데
절대 아님.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망가고
세자 광해가 '분조'로 전쟁터에서 활약해서
백성들 인기가 정말 좋았음 .
사대부들 역시 도망간 선조보다
전쟁터에서 백성과 함께 하는 광해군에 감격해
광해군이 왕이 된 후
광해군에 대해 왕권을 흔들 생각도 못 했음.
광해군은 왕이 되지 전과 후가 극명하게 다른 인물임.
광해군이 통치를 잘 했으면 인조반정도 없었을 것이고
병자호란도 발생 안 했을 것임.
요즘 광해군에 대한 드라마 영화가 없는 이유가
조선왕조실록 연구가 많이 되어 도저히
광해군 쉴드가 불가능해서 임.
이제 어디가서 광해가 중립외교를 했다니
선조 때문에 망했다는 소리를 하면
바보가 되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