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명의 근간을 이룬 제국 한나라
한나라를 건국한 한고조 유방은 시골 촌부로
정장 출신이었습니다 동네 이장 정도의 직위죠,
딱히 생업에 종사하는 바 없이 빈둥거리며
마흔이 되도록 동네 무뢰배들과 어울려 다녔으니
오늘날로 치면 "쉬었음 영포티" 였습니다.
유방이 여치와 혼인하였을 때 이미 40대였고
진나라에 대항하여 동네 친구들과 거병하였을 때
그의 나이가 48세입니다
패현에서 함께 몰려다니던 패거리들도
유방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모두 미천한 무뢰배들에 불과하였고
그나마 관직을 가진 사람도 말단 관리에 불과했죠
그리고 이 동네 백수, 건달, 쉬었음 청년들은
모두 한나라의 중요 공신이자 영웅이 됩니다
*여치 , 여태후
패현의 골목 대장 유방의 나이 43세, 마흔을 넘겨서
각종 아재 개그와 허세로 꼬셔서 결혼한 여인입니다.
그때 여치의 나이가 20대였으니 띠동갑 차이가 넘었죠
심지어 여치의 집은 직위도 높고 부유했습니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영포티에게 속아 결혼한 것도 억울한데
시골 가난한 시댁에서 시집 살이하며 개고생 하였죠
유방은 날 건달이라 항상 무뢰배들이랑 싸돌아 다녔고
여치는 모든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며 독박육아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방이 술먹고 압송하던 죄수를 놓치는 바람에
망탕산 늪지에서 숨어 지낼 때에도 여치는 남편을 찾아가
옷가지와 먹을 것을 전달해 주며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날 건달인 유방에게는 항상 바람피는 다른 여자가 있었으며
초한쟁패 과정에서는 죽을 고비도 수 없이 넘겨야 했습니다
그것이 한이 되었던 것일까요
한나라 건국 후 황후가 되자 결국 흑화해 버립니다
패현 시골 시절 때 부터 알아 온 유방의 친구들을
모두 토사구팽하여 숙청하는 하는데 앞장 섰으며
유방이 사랑한 여인들과 자식들은 모두 죽여버립니다.
척부인을 인간 돼지로 만든 끔찍한 일화가 유명하죠
여태후는 유방 죽자 한나라 정권을 장악하였고
한 제국을 사실상 통치했습니다
* 아버지 유태공
패현 시골에서 빈둥거리며 놀기만 하는 막내 아들 유방을 보며
아버지 유태공은 매일 한숨을 푹푹 쉬며 살았습니다.
유방이 거병을 하였을 때 이러 저리 도망을 치며 고생하다
급기야 항우에게 포로로 붙잡히기까지 했습니다.
항우가 유방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느그 아버지 유태공을
삶아서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이때 유방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나와 항우는 회왕의 명을 받들어 의형제를 맺었다.
그러니 내 아버지는 네 아버지기도 하다.
네가 굳이 네 아버지를 삶아먹겠다면 나한테도 국물 한 그릇은 나눠주어라."
귀족 출신으로 곱게 자랐던 항우는
듣도 보도 못한 패드립에 놀라서 분통을 터트렸고
유태공을 결국 죽이지 못 했습니다.
훗날 조선의 왕 효종은 이때의 일화를 읽고
"이게 정녕 사람 새퀴인가? " 욕했다고 합니다
한 제국을 건국한 뒤 추존 황제가 되어 태상황이 됩니다.
유방은 5일에 한번씩 문안을 드리며 극진하게 모셨고
한 고조가 유태공을 만날 때에는 황실의 예법이 아닌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는 가법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한 고조 유방은 미앙궁에서 가족들을 모두 모아 놓고
유태공의 장수를 기원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합니다
옛날에 저보고는 생업도 꾸리지 못하고 둘째 형처럼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디가 더 의지가 되십니까?
유방은 뒤끝 있는 남자였습니다.
* 큰형 가족
큰형 유백은 일찍 죽었고 큰 형수와 조카가 있었는데
한 고조 유방은 큰 조카에게 작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과거 큰 형 유백에게 빌붙어서 생활하던 시절
유방은 매번 무뢰배들을 끌고와 밥을 축냈었는데
유방이 국을 달라고 하면 큰 형수가 들으라는 듯 솥을 벅벅 긁으며
너희들 먹일 국이 더이상 없다고 눈치를 줬다고 합니다.
유방을 옛날에 겪었던 이것을 섭섭하게 생각해서
큰 집에 작위를 내리지 않았던 것이죠
이에 유태공이 유방을 불러서 작위를 주라고 하자
조카가 아닌 큰 형수에게 서운했던게 있어서 그랬다고 실토합니다
결국 큰 조카 유신에게 작위를 내리게 되었으니 그 이름이
'갱갈후'(羹詰候) 즉 '국 그릇을 긁는 제후'였습니다
* 작은 형 가족
작은 형 유중은 유씨 가족들 생계를 책임졌던 형입니다
유방은 그런 작은 형을 지금의 산서성 지역인 대(代)왕에 봉했습니다
하지만 흉노가 쳐들어 오자 봉지를 버리고 달아났고
그 때문에 관중 지역의 합양후로 강등하였습니다.
다른 의미로 작은 형을 가장 중요한 영지의 왕으로 봉했고
이후 영지를 버리는 죽을 죄를 지었음에도 다시 용서하고
수도 근처 봉지를 새로 주어 편히 살게 해줬단 뜻입니다
아마도 가난한 시절에 작은 형이 생계를 책임져 준 것에 대해
한나라 고조 유방이 나름 보답을 한게 아닌가 합니다
유중의 아들인 조카 유비는 아버지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여러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우며 공을 세웠고
유방은 조카 유비를 강남의 비옥한 땅 "오(吳)"왕에 봉했습니다
이 오왕 유비가 훗날 "오초 칠국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 조부인
패현 시골에 살던 무뢰배 날 건달시절 유방이
여씨와 결혼하기 전에 만나던 여인입니다
심지어 유방의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녀와 왜 결혼하지 않았는가? 의문 때문에
드라마와 같은 창작품에서는 과부이자 술집 여자다
같은 설정을 만들기도 하는데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녀는 천하통일 이전 초한 쟁패기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유방이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유방은 그녀의 아들인 서장자 유비를
초한쟁패 기간 데리고 다녔을 정도로 아꼈습니다.
천하를 통일하자 유비를 제왕에 봉하였으니
산동 지역의 가장 부유한 지역의 왕 작위입니다
심지어 제나라 말을 하는 모든 백성을 모아
서장자 유비의 백성으로 삼게 해주었습니다.
유방이 서장자 유비에게 내려 준 봉토는 70여성으로
한나라가 봉작한 왕 작위 중에 가장 거대했습니다
유비는 이후 병사하였고
장남인 유양이 작위를 이었습니다
여태후가 죽고 주발이 여씨일족을 처단할 때
유양도 함께 정변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이때 유양은 본인이 새로운 황제가 될 줄알았지만
주발은 유양의 처가 사씨의 위세가 너무 커서
제2의 여씨가 될까봐 염려해 대왕 유왕을 옹립하게 됩니다.
아버지 유비는 어머니가 너무 미천해서
황제가 되지 못 하였고
아들인 유양은 처가 댁이 너무 고귀하고 쎄서
황제가 되지 못 하였습니다
유방이 낳은 8명의 아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는데
이후 황제가 된 문황제 유항과 함께
오직 유비의 가문만 살아남았으니
그 후손들 역시 번성하여 왕 작위를 이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진왕 유총과 유대, 유요가 그 후손입니다.
* 번쾌
패현 시절 무뢰배 친구 중에 하나로 개백정이었습니다.
개를 전문으로 잡아 파는 푸줏간을 운영하였고
동네에서 유방과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었기 때문에
유방은 자주 번쾌의 푸줏간에 찾아가 돈을 내지 않고
공짜로 개고기를 얻어 먹곤 하였다 합니다.
생긴 것과 다르게 매우 겸손하고 예의가 바랐다고 합니다
윗 사람에게 예의를 다하고 아랫사람에게 정성을 다했으니
면상이 아닌 그의 인품을 믿고 따르는 이가 많았습니다.
그런 번쾌의 인성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훗날 한신이 왕에서 회음후로 강등되었을 때
내가 번쾌 따위와 동급이 되었다니! 하며 불쾌해 했지만
번쾌는 그런 한신을 만나면 "왕"을 대하는 예법으로
더욱 정중하고 예의바르게 숙여 한신을 대하였습니다.
개백정답게 괴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방이 거병하였을 때 용맹하게 선봉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복양성의 장함을 공격할 때 가장 먼저 성에 올라가
적을 23명을 베며 함락한 것을 시작으로
매번 가장 선봉에서 성에 올르는 공을 세웠으니
유방의 최측근이자 가장 용맹한 장군으로 명성을 알립니다
진나라 수도 함양을 함락했을 때에는 장량과 함께 나서
병사들이 함양을 약탈하는 것을 막으며 질서를 지켰고
홍문연에서 유방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칼을 들고 직접 나와 암살을 저지하고 유방을 살렸습니다
한중에서 나와 관중을 평정할 때 별동대를 이끌고
관중에 장함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옹. 함양 등을 평정합니다
초한쟁패에서 수십개의 성을 함락하며 전공을 세웠으니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친히 병력을 이끌고 5개의 군대를 패배시켰으며, 5개 성읍을 함락시키고,
6개군, 52개현을 평정하고, 승상 1명, 장군 12명, 이천석 이하 삼백석의 장관 11명을 포로로 잡았다.
번쾌의 전공은 언제나 선봉에서 직접 병사들과 함께 싸우며
그의 용맹함으로 세운 것이니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한 제국 공신 서열 5번째 무양후에 봉해졌고
이후 좌승상, 상국의 지위에 올랐으며
여태후의 동생 여수와 결혼하여 황실과 동서지간이 됩니다.
토사구팽으로 공신들이 모두 숙청되었음에도
번쾌는 살아남아 봉작을 유지하였습니다.
아내 여수와 적자 번항은 여태후 일파가 축출 될 때
함께 죽임을 당했고 서자인 번시인이 작위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가족 내부의 갈등으로 혈통 문제 때문에
무양후 작위가 끊어지게 됩니다
한나라 조정에서 훗날 번쾌의 후손 번승객을 찾아
모든 부역을 면제해 주며 제사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동탁의 무장 번조가 번쾌의 후손이라 합니다.
* 노관
유방의 아버지 유태공과 노관의 아버지는 친구였고
노관은 유방과 어려서 함께 자란 불알친구였습니다
패현에서 무뢰배 생활을 할 때 부터 가족처럼 지낸
유방이 가장 신뢰하였던 베프입니다.
유방이 거병을 하자 장군에 임명되었고
곧 태위(국방부장관)의 직위를 받았습니다
유방의 막사에 들어가 거의 생활을 같이 할 정도로
전쟁 기간 항시 붙어 다니며 함께 생활했죠
유방이 친구를 얼마나 아꼈는지는
관중을 평정하자 그를 장안후에 임명합니다
즉 함양 주변 지역을 영주로 준 것입니다
원래 유방은 다른 신하들이 왕의 작위를 요구하면
이를 기억했다가 반드시 죽였습니다
하지만 노관의 경우는 거꾸로 왕 작위를 주고자
유방이 진심을 다해 왕으로 임명한 경우입니다
유방의 불알친구로 인맥 말고는 아무런 전공이 없어
왕 작위를 줄 수가 없었음에도 신하들이 눈치 껏
노관을 연왕에 추천했고 유방은 흔쾌히 임명합니다
노관은 그렇게 연왕에 임명됩니다.
승상 소하도 북벌의 전공을 세운 조참도
목숨을 구해준 번쾌도 왕의 작위를 받지 못 했는데
노관은 아무런 전공 없이 인맥 빨로 왕이 된 사례죠
그만큼 유방이 아꼈던 인물입니다.
근데 그런 노관이 유방의 뒷통수를 쳤습니다
진회가 모반을 일으켰을 때
노관은 이를 막기는 커녕 도왔던 것입니다
이 사실이 한나라 조정에 알려지자
한 고조 유방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고자 수도로 노관을 소환하였으나
노관이 이에 불응하면서 사실상 빼박이 됩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배신을 했다니 믿겨지지 않죠
한나라에서 장군 주발을 보내서 토벌하게 지시하니
노관은 마침 병석에 누군 유방이 회복만 되면
장안으로 직접 가서 자복하고 항복하겠다 합니다.
불알 친구 유방을 직접 만나 보고 사정하면
분명히 봐줄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방은 결국 회복하지 못 하고 죽었고
그 소식을 들은 노관은 이제는 더 희망이 없다 여겨
흉노로 도망 가서 그곳에서 숨어 살다가
고작 1년도 안되어 병으로 죽었습니다
훗날 노관의 아내와 자식이 흉노에서 돌아와
여태후에게 배신한 것을 사죄를 하고자 했으나
마침 여태후도 병에 걸려 사죄를 못 했습니다
노관의 손자는 흉노에서 동호왕으로 지냈고
이후 한나라에 다시 귀순하여 약곡후에 봉해집니다.
노관은 아무런 공적도 능력도 없는 인물이었지만
오직 친구를 잘 두었기 때문에 왕에 오를 수 있었고
사기 열전에 그 이름을 남길 수 있던 인물입니다.
사마천은 이렇게 평합니다
"파리떼가 준마 꼬리에 붙어 천리를 가듯, 건달 무리들은 유방을 따라다니며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 소하
소하는 패현 시골의 주리로 말단 관리였으며
지역의 정장인 유방의 상관이었습니다.
직장 상사로 부하던 유방과 평소 친하게 지냈으니
유방이 노역에 끌려 갈 때 자기 돈 500전을 주며
여비에 보태주기도 했던 맘 따뜻한 상관이었죠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그렇게 잊혀졌을 시골 관리지만
유방이 거병을 하게되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패현을 지키던 현령이 유방과 친하다는 이유로
말단 관리인 소하, 조참을 죽이려하자
성을 넘어 도망쳐 유방 진영에 합류하였습니다.
이후 소하는 유방의 참모이자 재상으로 활약하며
천하통일을 위한 전무후무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역사상 가장 유능한 전쟁 승상이었습니다
제갈량 조차 깊게 존경하였던 인물이었으며
유방이 천하를 통일 할 수 있던 것은
사실상 소하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하는 진나라 함양을 점령하자 가장 먼저 한 것이
진 제국의 행정 문서를 선점하여 챙긴 것입니다
이 조치로 진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단 기간에 무너진 제국의 점령지를 안정시킬 수있었고
관중 지역과 파, 촉 지역의 행정을 정돈하여
유방이 전쟁을 지속하는 병참기지로 만들었습니다.
소하는 초한 쟁패기간 모든 보급을 책임졌습니다
유방은 항우와의 전쟁에서 번번히 전멸을 당했고
매번 패퇴하여 겨우 목숨을 부지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전쟁을 포기하고 항복을 할까 고민했지만
바로 후방에서 보내온 막대한 병력과 군량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유방에게 도착했습니다
항우도 유방의 병력과 군량이 도대체 줄지 않으니
소하는 무한으로 병력과 양식을 찍어내는 것이냐며
한번도 마추친 적 없는 후방의 소하를 언급하며
그의 엄청난 보급 능력을 두려워 했습니다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서
전설의 대장군 한신을 천거한 사람도 소하입니다.
유방에게 실망해서 떠나려 하자 소하가 달밤에 따라가
한신을 설득하였고 그를 대장군으로 추천했습니다
유방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조용한 선비였기에
소하는 유방과 따로 술자리를 한 적도 없습니다
오직 능력과 실력으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소하는 승상에 이어 상국으로 지내며
한나라의 행정 시스템을 사실상 혼자 구축했습니다
사살싱 한나라 전체를 설계하고 만든 공로가 있습니다.
소하는 공신 중에 가장 으뜸의 공신으로
찬후(酇侯)에 봉해져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