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1월3일 광주제일고(광주일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광주 학생 독립 운동이 일어났고 호남지역으로 확산되고 서울을 거쳐서 전국 각지로 확산된 항일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때 광주일고 학생들이 많이 잡혀갔는데 그걸 구하려고 항일운동에 서울에서 가장 많이 참여한게 배재고의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그때는 배재고 학생이 광주일고 학생을 구하기 위해 나섰는데 지금은 조롱을 하고 있는 현실 눈물나네요
참 그렇네요 배재고도 일제시대에는 항일운동한 좋은 학교였는데요 그런 자란스러운 역사를 놔두고 현재는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광주제일고(광주일고)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이 세워져있고
배재고에는 이승만 동상이 세워져 있는 현재의 상황
두학교의 엇갈린 현재는 과거의 선배들의 역사를 배우고 그걸 계승하는 정신을 키우는 올바른 역사교육이 있었으냐 아닐까요?
광주 학생 독립 운동(光州學生獨立運動) 또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光州學生抗日運動)은 1929년 11월 3일부터 전라남도 광주 시내에서 일어난 일본 학생의 한국 여학생 희롱으로 일어난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 간 충돌과 11월 12일 광주지역 학생 대시위 운동을 거쳐, 한편으로는 호남지역 일대로 확산되고, 다른 한편으로 서울을 거쳐서 전국 각지로 확산된 항일 운동으로 1929년 11월 말에서 1930년 3월이나 5월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독립운동을 말한다. 11·3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라고도 한다. 12월에는 경성과 부산, 평양, 함경도 등지와 같은 국내 지역과 간도, 미국, 중국, 일본 등으로 확산되었고, 1930년 5월까지 전국적인 동맹휴학, 학생 항일 시위로 변모, 발전했다.
1929년 발생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 운동 이후 국내 최대규모의 대중적 항일 운동으로 꼽힌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을 제정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광주시 북구 독립로 237번지길 33 제일고등학교
1954년
일제강점기 때의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궐기하는 학생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청동부조로 탑의 꼭대기에는 횃불 모양의 청동장식을 덧붙여 조형물의 기념비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념탑 규모는 높이 10.9m, 밑넓이 8.2m이다. 둥근 받침대 위에 네모난 탑신이 크게 3단계를 이루도록 하였고, 맨 위에 구리로 타오르는 봉화를 만들었다. 이 봉화 바로 밑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후면 탑명은 이은상과 고재기가 지은 것으로 글씨는 김상필이 썼다.
아래에는 '우리는 피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라는 글을 한글로 새겼다. 그 밑에는 구리판으로 일제에 항거하며 울부짖는 남녀 학생들이 부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승만 동상은 생략 뭐하러 흉한걸 올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