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희망, 비운의 세자 소현세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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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희망, 비운의 세자 소현세자 이야기.

최고관리자 0 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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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강화도로 제 빠르게 도망을 갔습니다.

남아서 백성들과 항전을 한 것은 소현세자였죠

세자는 과거 광해군이 임진왜란 때 그러했듯

전란 중 분조를 이끌며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그때 이런 일화가 전해집니다. 

 

지방을 돌며 병력을 모으던 소현세자가 

당시 타고 다니는 말이 진창 길을 가게 되었는데

조선의 관리들이 세자의 말이 더러워 질까 봐 

길에 볏짚을 미리 깔아 두었습니다. 

소현 세자가 이를 보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볏짚은 군마의 먹이로 사용될 귀한 군수품인데

어찌 이리 헤프게 쓴단 말이냐? 모두 거두라! "

 

당시 소현세자는 백성들이 고단한 것을 보고 

스스로 소고기를 금했으며 우유의 진상도 금했습니다 

더불어 농사에 사용될 소를 잡지 못 하게 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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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에서 인조는 후금에 항복하였고 

소현세자도 한양으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양의 백성들은 인조가 아니라

소현세자를 칭송하며 행렬을 환영했으니 

분조를 이끌며 소현세자가 백성을 위무하고

그동안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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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이 포위되고 나라의 멸망이 눈앞에 왔음에도  
인조는 감히 항복을 할 수도 성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본인이 신변이 너무 걱정되었기 때문이죠

 

과거 송나라를 멸했던 금나라도 여진족이었습니다.

당시 송나라 황제가 항복으로 하고 성밖으로 나가자 

여진족은 전례를 깨고 크게 굴욕을 줬을 뿐만 아니라 

휘종과 흠종을 저 멀리 북만주 시베리아까지 끌고가 

일평생을 유배지에서 외롭게 떨다 죽게 했습니다 

 

역사상 정강의 변으로 알려진 대 참극으로 

지금 조선에 쳐들어 온 여진족의 조상입니다 

오랑캐가 예법을 모르니 무슨 폭거를 할지 몰랐죠 

 

이에 소현세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며 

자신이 청나라 진영으로 가겠다 했습니다 

 

"나라가 누란지위에 있으니 너무 급박해졌다.

나에게는 동생이 있고 또한 아들이 있으니 

이들 모두 종사를 충분히 이을 수 있는 몸이다. 

내가 죽는다 해도 무엇이 유감이겠는가

내가 나가서 항복하겠다 전해달라"

 

청나라가 원한 것은 세자가 아닌 인조였기에 

결국은 인조가 직접 삼전도에서 절을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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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가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이제 막 전쟁이 끝났기에 양국의 불화는 여전히 심했습니다 

통역을 통해 대화를 하다 보니 중간에 참소를 하는 이가 많았죠 

때문에 청나라와 소현세자의 관계도 험악했습니다. 

 

이때 소현세자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세자는 청나라에서 양쪽 사이에 처해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또한 거스르지도 않았으며 어려움에 처해도 평탄한데 있는듯 했으니 

임기응변으로 청나라를 대하면서도 절대 실언이 없었다 

이에 청나라의 제왕들 왕자들 장수들이 점차 세자를 신임하게 되었고

이후 감히 세자에게 무례하게 굴지 못했다:"  -인조실록

 

소현세자는 포로로 끌려갔음에도 기개와 위엄을 잃지 않았기에 

청나라 장수들도 결국 점차 세자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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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도

조선의 인조는 여전히 친명사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실수를 과거에도 했던 적이 있죠 

 

정묘호란 때 조선은 공식적으로 한번 항복하였음에도

청나라 황제 즉위식 때 축하 사신을 보내 놓고선

정작 참석한 조선의 사신들은 절을 거부했습니다. 

청나라 황제는 오랑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깽판을 칠거면 차라리 안보내는 것이 맞았죠 

당연한 수순으로 조선 사신들은 극심한 구타를 당했고

청태종 홍타이지는 조선 정벌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터진 전쟁이 병자호란입니다. 

 

조선 인조가 똑같이 황당한 짓을 하자 

청태종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외교문서를 보냅니다 

 

"청나라에 있는 세자를 잊었느냐? 삼전도에서 본 짐을 잊었느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죠. 

여차하면 조선의 왕을 세자로 갈아 버리거나 다시 침공하겠다. 

이후 인조는 세자의 존재를 극도로 경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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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던 소현세자가 간신히 허락을 받아 

무려 3년 만에 잠시 조선에 들렸습니다.  

 

이때 백성들이 모두 흐느껴 울며 소현세자를 마중 나갔으니 

그 인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도성의 길이 막혀 버렸고 

벽제관에서 부터 한양성까지 백성들도 메워졌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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