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소음 민원에 눈치 보는 아이들‥"저희 조금만 놀게요" (2025.09.12/뉴스데스크/MBC)

앵커

'운동회' 날의 함성과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거웠던 추억으로 떠올리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예전엔 동네잔치였지만 요즘은 아닙니다.

"시끄럽다"는 민원에 아이들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데요.

정한솔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9일, 경기 성남의 한 초등학교.

빨강, 파랑 조끼를 입은 두 학생이 나란히 출발선에 섰습니다.

운동회의 백미, 이어달리기가 시작되자 응원이 달아오릅니다.

"청팀! 다시 백팀!"

마지막 바퀴에 청팀의 대역전극이 펼쳐지자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논 건 단 30분, 앞서 2시간 30분 동안 운동회는 강당 안에서 열렸습니다.

"시끄럽다"는 민원 때문입니다.

지난해 '가족과 함께하는 가을스포츠 축제' 때 인근 주민들 소음 관련 민원이 10건 가까이 들어온 겁니다.

급기야 주민 신고로 경찰도 출동했습니다.

학교는 이런 사정을 설명하며 올해는 학부모들의 참여와 참관이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강당이 협소해 소규모로 하다보니 올해는 운동회를 학년별로 쪼개 5일간 했습니다.

[임핀율·임정묵]
"엄마 아빠가 안 와줘서 슬펐어요. <조용히 마음속으로 응원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지난해 서울 609개 초등학교에 접수된 운동회 소음 민원은 214건, 2018년에 비해 세 배 정도로 늘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교는 운동회 시작 전 주민들에게 '협조 안내문'을 보내고, 학생들은 시끄러워도 이해해달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붙이기도 합니다.

지난 5월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 시작 전에 학생들이 사과부터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

초등학교 품은 아파트, '초품아'는 부동산 투자처로 인기지만, 아이들은 눈치보며 운동회를 하는 역설.

[신경아/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아이들에게 허용된 공간은 집과 교실과 학원이잖아요. 아이들에게 운동장을 돌려줘야 된다. 그래야 아이들이 경쟁뿐만 아니라 협력하는 법을 배우고."

[최미령]
"시끄러운 게 어딨어요? 참아줘야지, 이해를 하고. 지금 애들이 없어서 다 미래가 걱정되는 나라잖아요. 근데 왜 그 생각을 못해? <애들이 얼마나 기다리는데요 운동회를.>"

저출생 늪에 빠진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실입니다.

MBC뉴스 정한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