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어떤 전쟁이었는지는 다들 알겠죠?
일본이 명을 공격하기 위해 첫단계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입니다.
명나라도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의 궁극 목표가 자국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려 10만명에 달하는 군대를 파병하여 조선을 도운 것이죠.
그러니까, 명나라의 입장에서 조선에의 파병은 '예방전쟁'이었습니다.
일본군이 압록강을 넘지만 않는다면 명나라의 근본적인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명나라는 일단 파병해서 일본군을 한반도 북부에서 중부 이남으로 몰아내는데까지 성공한 뒤에,
곧바로 일본과의 협상을 개시합니다.
협상 과정에서는 전투를 지양하는게 기본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조선군 입장에서는 협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속이 터지는 일이었죠.
일본군이 조선땅을 장악하고 백성들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 길어지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조선군 장군들은 협상 기간에도 일본군과의 전투를 이어갔습니다.
한치라도 더 땅을 수복해서 협상을 유리하게 만들 필요도 있었구요,
무엇보다도 조선이 협상에서 배제된 상황에서 명나라의 선의만을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 킹갓엠퍼러제너럴마제스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빠지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특히 임진왜란에서 수군은 육군보다 더 공세적이고 압도적인 전과를 자랑하고 있던 참이었죠.
킹갓엠퍼러...하여튼 위대한 이순신 장군은 협상과 상관없이 신나게 일본군을 줘패고 계셨습니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성가시고 짜증나는 일이었습니다.
빨리 일본과 협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럴때마다 조선군이 일본군을 쥐잡듯이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죠.
일본측의 협상대표인 고니시 유키나카가 얼마나 찡찡댔을까요?
그래서 명나라의 협상대표인 선유도사 담종인은 조선군에 공문을 보냅니다.
이를 '금토패문', 즉 '토벌을 금하는 패문'이라 부르는데, '패문'은 상급관청이 하급관청에 보내는 지시서의 성격에 가깝습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명의 신하국가였으므로, 관리들의 서열에서도 조선 관청은 명 관청의 하급관청으로 보았던 것이죠.
원문과 국문 번역본은 나무위키에서 '금토패문'을 찾아보시면 아주 잘 나와있는데, 5줄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본군은 이제 안싸우겠대. 착해지겠대.
- 근데 조선군 너네 왜 일본애들 죽이고 다녀?
- 이제 일본군 건들지 말고 너네 동네로 돌아가서 쳐박혀 있어.
- 내말 안들으면 윗선에 찌를테니까 괜히 인생 꼬이지 말고.
- 너네 글 잘읽으니까 다 이해했지? 알아서 잘 시행해라.
이 글을 받아보신 충무공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그야말로 격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대의 우리가 읽어도 열받는 일인데,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보고 느끼신 충무공이야 오죽했을까요.
하지만 충무공은 확실히 평범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X까 X발럼아"가 아니라, 아주 논리적으로 금토패문을 반박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 공무원의 체면도 세워주는 매우 훌륭한 답서를 보낸 것입니다.
이 내용은 너무 훌륭해서 번역본 전체를 소개하겠습니다. 출처는 나무위키 '금토패문' 항목입니다.
https://namu.wiki/w/%EA%B8%88%ED%86%A0%ED%8C%A8%EB%AC%B8
조선국의 배신(陪臣=신하)이 삼가 명나라 선유도사 대인 앞에 답서를 올립니다.
왜인들이 스스로 트집을 잡아 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서 우리의 무고한 백성들을 죽였으며, 또 서울을 침범하여 자행한 흉악한 짓이 끝도 없습니다. 이에 한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은 통분이 골수에 사무쳐 이 적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겠노라 맹서했습니다. 그리하여 각 도의 전함들을 수도 없이 정비하여 곳곳에 주둔시키면서 동서에서 책략으로 호응하고 육지의 신장(神將)들과 함께 수륙으로 합공함으로써 남아 있는 잔당들의 배 단 한 척도 못 돌아가게 하여 나라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습니다.
이달 3일에 선봉선 200여 척을 거느리고 곧장 거제에 들어가 적의 소굴을 소탕하고, 차례로 무찔러 씨조차 남기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선 30여 척이 고성 및 진해 등지로 들어와서 여염집을 불사르고 남아 있는 백성들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가고 기와를 실어 나르고 대나무까지 베어다 배 한 가득 실었습니다. 그 정상(情狀=사정과 형편)을 따져보자면 참으로 분통이 터집니다. 이에 그 배들을 쳐부수고 흉악한 무리들을 추격한 다음 수군 도수부에 급히 보고하여 대군과 합세해 이끌고 가 곧장 적을 섬멸하려던 차에, 뜻하지 않게 도사 대인의 선유 패문을 받았습니다. 이를 받들어 읽어보니 재삼 간곡하신 깨우침의 말씀이 참으로 극진하였습니다.
다만 패문에서 말씀하시기를 '일본의 장수들은 모두가 온 마음을 다 해 귀화하려 하고 있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병사들을 쉬게 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하고 있다. 너희도 각기 여러 병선들을 이끌고 속히 제 고장으로 돌아가고 일본 군사들의 진영 가까이 머무르면서 불화를 야기하거나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인들이 진을 친 채 점거하고 있는 거제·웅천·김해·동래 등은 모두 우리나라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일본 진영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이 대체 무슨 뜻입니까? 우리에게 속히 제 고장으로 돌아가라 하였는데, 제 고장이란 대체 어디를 말합니까?
불화와 혼란을 일으킨 자도 우리가 아니라 왜입니다. 왜인은 권모술수와 거짓에 능하여, 예로부터 신용을 지키는 의로움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 저 흉악한 무리들이 아직도 악행을 멈추지 않은 채 연안으로 물러나 한 해가 다 가도록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이곳저곳을 날뛰며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는 것이 전보나 배나 더하니, 무기를 집어넣고 바다를 건너가고자 하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지금 저들이 강화하겠다는 말은 실로 거짓입니다.
그러나 대인의 뜻을 감히 어길 수 없으니, 우선 시일을 넉넉히 주시면 곧 우리 임금께 급히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대인께서 이 뜻을 살펴주시어 따르고 거스르는 도리를 알게 하여 주신다면 천 번 만 번 다행한 일이겠나이다.
충무공의 답서를 감히 5줄 요약해볼까요?
- 먼저 쳐들어온게 일본놈들인건 아시죠?
- 우리땅을 차지하고 약탈하는건 일본놈들인것도 아시죠?
- 그럼 우리가 돌아가야 할까요, 일본놈들이 돌아가야 할까요?
- 믿을게 따로 있지 일본놈들 말을 믿나요..?
- 그래도! 상국 대인께서 말씀하시니까! 보고 올리겠습니다만 재검토 좀 해주십쇼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일본군이 협상에 임한 것은 당시 명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수세에 몰리자, 전열을 정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애초에 일본이 전쟁 또는 협상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는 명나라의 입장과 양립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여차저차 고니시 유키나카와 심유경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하는데, 이건 고니시와 심유경이 각자의 상급자들을 속이고 어떻게든 만들어낸 협상안이었기 때문에 양국에서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구요
(이때문에 심유경은 참수되었고 고니시도 죽을뻔하다가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결국 이 전쟁은 알량한 협상이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군이 전쟁을 지속할 능력이 사라지면서 끝났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어떤 생각을 하며 답서를 썼을까요.
충무공은 전쟁과 군대 그 자체도 고려해야 했지만,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 조선 백성들의 피해와 사무친 원한까지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아마도 충무공 자신의 분노와 원한,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피로는 그 모든 것의 다음으로 미뤄두었을 겁니다.
"왜인은 간사하여 신용을 지킨 일이 없다"는 말은 단지 충무공이 일본을 비난하기 위해 쓴 말이 아닙니다.
충무공은 이 전쟁의 구조를 파악한 와중에서, 부질없는 협상이 아닌 전선의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전략적인 판단을 한 것입니다.
광복 80주년입니다.
광복을 위해 싸우고 땀흘리신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근원에는 충무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시작하여 이 모든 분들이 있기에 오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