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재일동포 감독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는데요.
감독은 "이들의 목소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말했습니다.
도쿄에서 신지영 특파원이 만났습니다.
리포트
아흔 살 노(老) 감독이 무대에 오르자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재일동포 2세 다큐멘터리스트 박수남 감독.
시력을 잃고, 거동마저 불편하지만 그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습니다.
[박수남/감독]
"반가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위안부, 강제노역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딸 박마의 감독의 도움으로 완성됐습니다.
작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한국에서도 상영됐던 이 작품이 일본에서도 개봉했습니다.
당초 2주만 상영하려다 현지 호평이 이어지면서 상영 기간도 훌쩍 늘어났고, 오사카 등 다른 지역에서의 확대 개봉도 결정됐습니다.
[일본인 관객]
"팟캐스트로 상영 소식을 듣고 보러 오게 됐습니다."
감독은 200명 남짓의 피해자를 만나, 그들의 한 맺힌 이야기를 기록하는데 반 평생을 바쳤습니다.
피해자 10명 중 9명은 이미 세상을 떠나, 그의 작업만이 유일무이한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고 이옥선/위안부 피해자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중)]
"지금 여기서 내가 보이라면 보여주겠어요. 너무너무 억울합니다."
재일동포 2세라는 이유로 겪어 온 차별과 모욕은 그를 기록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박수남/감독]
"왜 조선인에게 돌을 던지는 걸까. 화도 났지만, 무엇보다 슬펐습니다."
[박마의/박수남 감독의 딸]
"(어머니 작품을 통해) 식민지로부터 시작된 차별이 지금도, 제 세대가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금도 '박 씨'라고, 내 뿌리는 '한국'이라고 말하면 상대방 반응이 얼굴에 확 드러나요."
패전 이후 80년이 흘렀어도 일본의 반성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는 박수남 감독.
[박수남/감독]
"(일본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어요. 모두 없었던 이야기로 만들려고 합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반드시 기억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박수남 감독]
"(그 기억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평생 우리나라의 역사로서 남겨야 될 영화가 이 영화입니다. 부디 부탁하겠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신지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