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만화, 원피스를 보면 '해적왕'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서 간혹 국내의 네티즌들이 "한국 역사에서는 해적왕이나 그와 비슷한 사람이 없었는가?"라는 의문을 표하기도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전설에서도 해적왕이 등장하기는 합니다.
그 해적왕 전설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동해의 섬인 울릉도인데, 삼국시대의 울릉도에는 우산국이라 불리던 고대 왕국이 있었고, 그 왕국을 다스리던 '우해'라 불리던 왕이 있었다고 울릉도 현지의 전설에 언급됩니다.
울릉도의 우해왕 전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먼 옛날 삼국시대 시절, 일본 대마도의 왜구들이 우산국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자, 분노한 우해왕은 군사들을 가득 태운 배를 이끌고 직접 대마도로 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집들을 불태웠습니다. 그러자 겁을 먹은 대마도 영주는 '풍미녀'라는 자신의 딸을 우해왕에게 주는 대가로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풍미녀는 매우 아름다웠고, 그녀를 본 우해왕은 사랑에 빠져 대마도 영주의 제안에 응했습니다.
풍미녀를 데리고 우산국으로 돌아온 우해왕은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백성들을 동원해 호화로운 궁궐을 짓게 했습니다. 하지만 풍미녀는 궁궐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아 우해왕한테 "나는 값비싼 보물들을 갖고 싶어요."라고 독촉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해왕은 신라의 해안가에 상륙하여 많은 보물들을 약탈해왔습니다.
우산국의 침입에 분노한 신라왕은 이사부 장군을 보내 우산국을 토벌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바다에서 살아 뛰어난 해전 실력을 가지고 있던 우산국 병사들은 나약한 신라 수군을 손쉽게 물리쳤고, 이사부는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겨우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신라로 돌아온 이사부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이사부는 왕에게 앞으로 한 번만 기회를 더 달라고 애원하여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한 이사부는 배를 만들고 병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우산국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한편 승리한 우해왕은 기고만장하여 연일 잔치를 벌이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던 중 풍미녀가 아이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우해왕은 크게 슬퍼하며 그녀의 영혼을 위해 비파를 타게 하고 제사를 지내며 나랏일을 돌보지 않아 백성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이윽고 이사부는 지난 번보다 더 많은 배와 병사들을 거느리고 우산국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우해왕은 직접 나서서 병사들과 함께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신라군이 워낙 많아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전투에서 우세해진 이사부는 우산국 사람들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배 안에 싣고 온 무서운 짐승인 사자들을 풀어서 모조리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지쳐 있던 우산국 사람들은 이사부의 협박에 속아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어 버렸습니다. 우해왕은 우산국 백성들을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이사부에게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협상을 했습니다. 그 결과, 우산국 백성들은 살아남았지만 우해왕은 바다로 몸을 던져 자결을 했고, 그 이후부터 우산국은 신라의 땅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이 울릉도에 전해지는 우해왕 전설입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공식 역사서에는 우해왕의 전설이 언급되지 않지만, 이 우해왕 전설을 삼국사기의 이사부 관련 내용과 비교하면 확실히 의문이 풀립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공격한 이유가 언급되지 않지만, 우산국이 먼저 신라를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원정을 단행한 것이라고 설명한 우해왕 전설의 내용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신라의 원정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우산국을 정복함으로써 안전을 도모하려는 계획에서 비롯된 일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울릉도는 동해의 한복판에 있어서 신라가 계속 울릉도를 지배하고 있으면, 신라의 적국인 고구려와 왜(일본)가 바다를 통해 교통하는 것을 감시하고 견제하기에 편했기 때문이었죠.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울릉도를 무대로 활동했던 해적왕 '우해'의 전설은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잘 포장한다면, 일본의 만화 원피스처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 도현신/ 서해문집/ 281~2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