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궁궐 공사로 백성들 목숨 끊고 해외 파병 병사는 굶고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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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궁궐 공사로 백성들 목숨 끊고 해외 파병 병사는 굶고 싸움

최고관리자 0 2 07.09 16:22

광해군의 궁궐 공사의 악날함은

해외 파병 가는 군사들 밥도 안 챙겨주어

백성들이 이를 갈게 만들며

광해군의 악질적은 폐모살제는

사대부들이 칼을 갈게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일본군의 식민 사관에 세뇌 되어

광해군 우상화를 위해 태어난 기생충들이 많다.

광해군의 궁궐 공사의

악독한 악질 행태는 어느 정도 일 까

광해군일기[중초본]116권,

광해 9년 6월 25일 무오 2/5 기사 /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史臣曰: "謹按營建都監三月所用米,

六千八百三十餘石, 用布六百十餘同,

至於唐朱紅六百斤, 直布六十同, 正鐵十萬斤,

種種他物, 稱是而皆以米布充之,

一殿營建時所用, 小不下千餘同。

所謂都監郞廳下至匠人等, 遷延日月, 徒費廩料。

米布有限,

工作無期, 推髓剝膚, 賣男(粥)〔鬻〕 女, 負戴相望, 饑莩盈野。

甚者往往自縊而死。

彼爲都監者, 不以艱難辛苦, 不能繼日之意來告,

而每以徵歛民間, 張皇侈大爲事, 可勝痛哉!"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

米布有限, 工作無期, 推髓剝膚,

賣男(粥)〔鬻〕 女, 負戴相望, 饑莩盈野。

甚者往往自縊而死。

번역: "쌀과 베는 한계가 있고

공사는 기약이 없으니,

(백성들의) 골수를 짜내고 살가죽을 벗겨내어,

아들을 팔고 딸을 치우며,

등과 머리에 짐을 지고 피난 가는 행렬이

서로 바라볼 정도였고,

굶어 죽은 시체가 들판에 가득했다.

심한 자들은 종종 스스로 목을 매어 죽기도 했다."

공사에 투입된 막대한 물자

史臣曰: "謹按營建都監三月所用米,

六千八百三十餘石, 用布六百十餘同,

至於唐朱紅六百斤, 直布六十同,

正鐵十萬斤, 種種他物, 稱是而皆以米布充之,

一殿營建時所用, 小不下千餘同。

번역: 사신(사관)은 말한다.

삼가 영건 도감에서 3개월 동안에 쓴 것을 살펴보니,

들어간 쌀이 6천 8백 30여 석이고

포목이 6백 10여 동이었으며,

당주홍 6백 근의 값은 포목 60동이었고

정철(正鐵)이 10만 근에 이르렀으며,

각종의 다른 물품도 이와 비슷하였다.

그런데 이를 모두 쌀과 포목으로 충당하여서

한 전각을 영조하는 데 들어가는 것이

적어도 1천여 동을 밑돌지 않았다.

광해군 궁궐 공사 3개월 사용 내역이다.

쌀 6,830석

포목 610동 1동 =50필 = 12석 =7,300석

당주홍 600근 =포목 60동 =720석

정철 10만근 = 정철 8근 = 쌀 1석 =12,000석

3개월 합계 26,850석 (3개월)

1개월에 8,900석 정도 사용

광해군 궁궐 공사 1년 사용 수준이

10만6천800석 수준이다.

광해군 때 궁궐 공사에 사용하는 10만석은 어느 수준일까

《효종실록》 효종 즉위년(1649년) 11월 5일 기사

원문:戶曹啓曰: "…… 三南量田已畢, 合計元結,

大約爲四十餘萬結, 而其中陳頉·給災, 居其大半, 準其所出,

一歲正稅, 不過八九萬石。"

번역:호조가 아뢰기를, "……

삼남(三南)의 양전(量田)이 이미 끝났는데

원결(元結)을 합계하면

대략 40여 만 결(結)이 됩니다.

그러나 그중에 묵어 버린 토지와

재해를 입어 세금을 면제해 준 토지가 대개

그 절반을 차지하므로

그 나오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1년의 정세(正稅)는 8만~9만 석(石)에 불과합니다."

광해군 때와 효종 때가 다르다 하나

1년 10만석이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조선왕조의 수입이 저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모두는 아니지만 막대한 지출을 했고

백성들은 죽을 맛이 아니라 죽어 나갔다.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의 국가 예산 비중

예산(약 22조 원)이 국가 총예산에서 차지한 비중은

단년도 예산(2010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7.5%,

사업이 집중 진행된 3개년(2009~2011년)

누적 총예산 기준으로는 약 2.4% 수준

이런 공사를 한 이명박은 욕 많이 쳐 먹었는 데

광해군에 비하면 새발의 피 속에 기생충 수준이다.

광해군 궁궐 공사에 사용된 정철 사용량 문제다

군기시(軍器寺)는

조선시대에 조총, 활, 화살, 화포, 칼 등

각종 무기의 제조와

전국의 군기(軍器) 관리를 총괄하던 중앙 관청

군기시 1년 정철 사용량

광해군 시기 무기 제작을 관장하던

군기시(軍器寺)에서 1년간 상납받아 소비하던

정철(正鐵, 불순물을 제거한

양질의 무기용 철)의 양은 1만 근이었다.

광해군일기[중초본]80권,

광해 6년 7월 25일 을해 1/3 기사 /

1614년 명 만력(萬曆) 42년

兵曹·火器都監啓曰: "…… 軍器寺一歲外貢正鐵之數, 僅至一萬斤。

번역

군기시에서 1년에 외공으로 받아들이는

정철(正鐵)의 수량이 겨우 1만 근입니다.

광해군이 궁궐 공사에 3개월 동안 사용하는

10만 근의 정제된 철은

광해군 시절 군대에서 1년 1만 근 뛰어 넘는 수준

국가 수익은 공납이 또 있다

《효종실록》 효종 즉위년(1649년) 11월 5일 자

우의정 김육(金堉)의 상소문(별폭) 기사

조선왕조실록 원문 내용 중에 이런 글이 있다.

兩湖地方之田結, 總爲二十七萬結,

木綿五千四百同, 米八萬五千石。

양호 지방의 전결(田結·토지 면적)은

총 27만 결(結)에 달하니,

(대동법을 시행하면 환산되는 세금은)

목면이 5천 4백 동(同)이고

쌀이 8만 5천 석(石)이 됩니다.

양호(兩湖) 지방: 호서(湖西·충청도)와

호남(湖南·전라도) 두 곳을 합친 말

그러니까 충청도 전라도 전 지역에서

생산한 쌀 공납 보다 광해군 궁궐 공사

사용량이 많다는 것이다.

광해군의 이러한 궁궐 공사는

평시라도 욕 쳐 먹어야 하는 데

청나라가 명나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요동을 차지하고

명나라 황제가 파병 도움을 요청 하는

그 순간에 국방을 강화해야 해서

비변사과 양사 가 광해군에게

제발 정신차리고 궁궐 공사 중단

국방력 강화 군량미 확보는 건의해도

광해군은 아몰랑 해외 파병 가는 군사들

먹을 식량도 제대로 안 줘서

사르후 전투에서 산 속에서 굶다가 항복 한 것이

실리 중립 외교라고

일본군에서 식민 사관으로 세뇌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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