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의 외손자, 궁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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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의 외손자, 궁예 이야기

최고관리자 0 3 06.2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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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을 세워 동북아 해상교역을 장악한  장보고는

이제 독립적인 거대 군벌로 성장해 큰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런 장보고에게 도움을 청한 이가 있었으니 

신라 중앙의 극심한 왕권 다툼 속에서 도망쳐 온 김우징입니다 

 

당시 그가 장보고에게 약조하기를 
"나를 왕으로 만들어 주면 당신의 딸을 신라 왕후로 삼겠다"

 

골품제로 신분제가 엄격하던 신라에서 엄청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해상왕이 되었음에도 골품제의 벽을 넘지 못했던 장보고에게 
마지막 일생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기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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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년 장보고는 거병해 군대를 이끌고 신라로 진격했고  
신라 정부군을 달구벌에서 격파하여 민애왕을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장보고의 도움으로 김우징이 왕위에 오르니 
신라 45대 국왕 신무왕입니다. 

 

하지만 장보고가 옹립한 신무왕 김우징은 
왕위에 오른지 고작 1년만에 승하해 버렸습니다 

 

그의 아들 문성왕이 즉위했습니다 

 

신라 조정에서는 즉위에 공을 세운 장보고에게 
식읍 2천호를 하사하고 진해장군 직위를 내리며 회유했지만 
장보고가 원했던 것은 재물이나 직위가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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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자신의 딸이 신라의 정식 왕후가 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골품제의 나라 신라에서 이는 용납될 수 없었고 
신라 귀족들의 강한 반대로 결국 거절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여 장보고기 반란을 일으키자   
신라 조정에서는 염장을 보내 장보고가 술에 취한 틈에 
칼로 그의 목을 베어 암살해 버렸습니다 

 

청해진은 장보고가 죽은 뒤

5년을 더 유지하다 851년에 해체가 됩니다. 

그렇게 장보고의 해상왕국 청해진은 끝났습니다 

 

여기서 미스테리한 일이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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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왕의 숙부로 김의정이란 인물이 있었습니다 
장보고가 옹립했던 신무왕의 이복동생으로
문성왕의 숙부가 되는 인물입니다 

 

근데 이 김의정은 문성왕 시절에 갑자기 권력이 커집니다 
병부령을 맡았다가 상대등이 되었고 
급기야 문성왕이 죽게 되자 문성왕의 아들이 있었음에도 

김의정이 문성왕의 후계자로 왕위에 오르죠 

 

김의정이 상대등에 올라 권력을 잡은 시기는 849년

장보고 사후 3년 뒤로 아직 청해진이 남아 있을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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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라벌로 보내졌던 장보고의 딸이 생각납니다. 

 

신분제의 벽 때문에 문성왕의 정식 왕후가 되지는 못 했지만 
남은 청해진 세력들을 달래기 위해선 약속을 지키는 시늉은 해야하죠

이때 장보고의 딸은 아마도 정치적 타협 차원에서 
왕 대신에 숙부인 김의정에게 첩으로 보내졌으리라 봅니다  

 

공교롭게도 김의정은 장보고의 딸을 첩으로 들인 덕분에  
막강한 청해진 세력을 흡수
할 수 있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신라의 상대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청해진은 그후 2년 뒤 완전히 해체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김의정이 문성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니 
신라 47대 국왕 헌안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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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궁예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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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弓裔)는 신라인이니 성은 김씨(金氏)이다.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憲安王, 의정)이요,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 삼국사기 궁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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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아버지는 신라 헌안왕이고 어머니는 후궁이었다 합니다  

후궁이 아들을 낳자 그 아이가 너무 비범하다는 이유로 죽이려 했는데 
당시 궁녀를 통해 아기를 몰래 빼돌려 겨우 살려냈고 
그 과정에 눈을 다쳐 애꾸눈이 되었다 합니다 

 

그의 아이의 이름이 궁예(弓裔)입니다. 

 

매우 생소하고 특이한 이름이죠 

궁예가 헌안왕의 아들이니 그의 성은 김씨입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이런 비슷한 이름을 쓰는 사람이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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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張保皐)는 본래 이름이 궁복(弓福) 혹은 궁파(弓巴)이다."
-삼국사기 장보고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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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원래 신라 이름은 "궁복" 입니다 
헌안왕의 버려진 아들의 이름은 "궁예" 입니다 

 

궁씨???

 

고려사에 등장하는 고경참문에 의하면 궁예는 丑년생이라 합니다 

그러면 궁예가 태어난 시점을 845년 또는 857년이 됩니다. 

 

845년은 문성왕이 장보고의 딸을 왕후로 맞이하는 문제로  

한창 신라 조정에서 논쟁하며 고민하던 시기이고 

857년은 헌안왕 김의정이 신라의 국왕으로 즉위한 해입니다 

 

만약 궁예의 탄생을 845년으로 잡는다면 

문성왕 대신 김의정이 장보고의 딸을 맞이한 시기와 일치하죠

 

헌안왕의 후궁이자 궁예의 어머니는

바로 장보고의 딸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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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신라 왕실을 위해서 큰 병력을 일으켜 왕을 세워줬지만 
신라 왕실은 그 약속을 저버리고 장보고를 암살했습니다 

장보고의 딸은 약속 된 정식 왕후가 아닌 첩이되었고 헌안왕을 세워줬지만 
헌안왕은 장보고의 딸이 아들을 낳자 바로 죽이려 하며 버렸습니다

 

그렇게 한을 품고 태어난 아이가 장보고의 외손자 궁예인 것이죠  

 

궁예가 왜 그토록 신라를 증오하고 잔인하게 굴었는가?

원수인 신라 왕실에게 피의 복수를 다짐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복수도 있지만 장보고의 한도 함께 담겼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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