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번 아니면 2번만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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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번 아니면 2번만 있는 나라"

최고관리자 0 20 10.17 19:3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3/0000062348?sid=102

영화 '암살자(들)' 논란… 그 무엇에도 1번 아니면 2번만 있는 나라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한 지 3주 남짓 지났다. 이 영화를 둘러싼 말과 글을 따라가다 보면 참으로 기괴한 장면과 마주친다. 정작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배우의 연기나 미스터리 추적극으로서의 완성도, 1974년을 재현한 방식 등 '극'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는 묻혔고, "어느 편 영화인가"를 따지는 고함만 남았다. 우리는 영화를 본 게 아니라 투표를 한 것이다. 1번 아니면 2번에.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현장의 총성 횟수와 공식 확인된 탄환 수 사이의 간극 같은 의문을 따라가지만, 배후를 특정하지 않은 채 끝을 낸다. 제작진은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긴 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고, 논란은 급기야 국정감사장까지 번졌다.

열린 결말의 빈칸을 채운 것은 관객이 아니라 진영이었다. 제1야당 대표는 "표현의 자유는 좌파의 전유물인가"라고 물었고, 같은 당 의원은 영화를 "패륜적 범죄"로 규정하며 사자명예훼손 처벌까지 거론했다. '패륜'이라고 비난하던 한 의원은 주연 배우의 얼굴을 두고 "북한상"이라는 낙인까지 찍었다. 정작 그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당의 한 의원은 "싸우다 싸우다 영화와 싸우나?"라고 응수하며 "보러 가야겠다"며 관람을 독려했다. 한 유명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12·3 비상계엄을 진압하지 못했다면 똑같은 시대를 겪을 수 있었다며 영화를 오늘의 정치에 곧바로 연결했다. 영화로 시작된 논쟁에서 영화는 사라지고, 이제 전선만 남았다.

싸우려고 영화를 보는 건가

기시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의 봄'에서 '건국전쟁'까지, 영화가 개봉하면 진영이 줄을 서고 정치인들이 극장을 찾는 풍경은 이제 한국 사회의 익숙한 의례가 됐다. 올해 초 '왕과 사는 남자'처럼 수백 년 전 이야기쯤 돼야 안심할 수 있는 걸까. 공교롭게도 두 영화에는 같은 배우가 주연으로 나왔다. 같은 얼굴인데, 한 영화에서는 1200만 관객의 박수를 받았고, 다른 영화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북한상'이 됐다.

규칙은 단순해 보인다. 우리 편에 유리하다 싶으면 '예술적 허구'고, 저쪽 편에 유리하게 보이면 결코 허용해선 안 될 악마의 각본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한 여당 의원은 야당 대표가 지난해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를 놓고 '역사관이 다른 것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했던 말을 꺼내들었다. 원칙이 작품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이 원칙을 골라 쓰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 거울은 어느 쪽에나 똑같이 놓여 있다.

1번 아니면 2번,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숫자도 이를 말해 준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시행한 2021년 선진 17개국 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강하다"고 답한 한국인은 90%에 달했다. 미국과 함께 공동 1위였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5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도 이념 갈등은 계층·노사·세대·남녀 갈등을 모두 제치고 한국 사회 최대의 갈등으로 꼽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념이 다른 모든 갈등을 집어삼킨다는 점이다.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는 남녀·노사·환경 갈등까지 진보·보수의 렌즈로 바라보는 '갈등의 이념화'가 찬반 대립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원전도, 부동산도, 이제는 영화 한 편까지 예외가 아니다. "그거 어느 편 얘기야?"라는 질문에 답을 듣는 순간 우리 생각은 멈춘다. 유권자가 사람과 정책 대신 번호만 본다면, 누군가는 별다른 노력 없이 '진영 프리미엄'을 누리며 당선증을 받아내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진짜 질문을 없애버린다. 실존 인물의 비극을 소재로 한 픽션은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가, 공식 기록에 남은 의문을 대중문화가 다루는 것은 역사에 대한 성찰인가, 음모론의 확산인가. '암살자(들)'이 던질 수 있었던 이 같은 질문들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붙들어야 할 시민적 물음들이었다. 그러나 "좌파 영화야 아니야"라는 단 하나의 질문에 밀려 제기조차 되지 못했다.

비판이 사람을 향해 치닫는 것도 문제다. 한 보수단체 대표는 주연 배우의 자택 앞에 한 달 가까운 기간의 집회를 신고했고, 도로명 번호가 식별되는 사진까지 공개했다. 별점 3점을 준 평론가의 리뷰 영상은 비공개로 전환됐다. 작품을 비판할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배우의 집 앞은 비평의 공간이 아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 다음엔 창작자, 그 다음은 평론가, 기자들까지 차례차례 논쟁적 주제는 알아서 피하게 될 것이다. 이런 '위축 효과'에 치러야 할 비용은 특정 진영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감당하게 된다.

양극화는 일상의 관계도 무너뜨린다. 앞선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58.2%는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답했고, 33.0%는 '술자리조차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정치학은 이를 '정서적 양극화'라 부른다. 정책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라, 상대 진영의 사람 자체를 싫어하고 무조건 불신하는 상태다. 명절 밥상에서 영화 얘기 한마디가 가족 간 언쟁으로 번지는 풍경은, 위 숫자가 우리 삶의 가장 사적인 영역까지 파고들었다는 증거가 된다.

마지막으로 사회가 중요한 문제를 풀 능력을 잃는다. 모든 의제에 진영의 깃발을 달아버리면, '무엇이 옳은가'보다 '누가 말했는가'가 결론을 정한다. 상대편이 제시한 정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거부되며, 우리 편의 명백한 잘못은 필사적으로 감싸진다.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획 돌아간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공동의 문제를 함께 풀 능력을 잃은 공동체가 오래 번영한 사례는 현재까지 없는 것으로 안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 다 죽어!"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어둠 속에서 서로를 죽이는 난투를 벌일 때, 최연장자인 노인이 침대 꼭대기에 올라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 다 죽어!"라고 외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 외침이 아닌가 싶다. 이런 싸움에 승자는 없다. 달콤한 반사이익은 우리와 경쟁하는 나라들의 몫으로 돌아갈 뿐이다. 1번과 2번의 벽을 한 번에 허무는 묘수는 없다. 다만 작은 습관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일단 번호보다 제발 내용을 먼저 보자. 무엇이든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진영의 전언으로 결론 내리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을 '하나 더' 하자. "이것은 어느 편인가" 옆에 "이것은 무엇을 묻고 있는가" "내가 반대편이었다면 같은 판단을 했을까"를 나란히 놓아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판단을 유보할 용기를 갖자. 즉답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양쪽 다 일리가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기권이 아니라 생각하겠다는 용기 있는 선언이다.

열린 결말의 영화 한 편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회라면,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미래의 문제들은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번도 2번도 아닌 3번, '생각'이다. 여기서 멈추자. 이러다가 정말 다 죽는다.

솔직히 맞는말이든 틀린말이든 조선일보는 이런소리 하면 안되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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