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는 나름 존경받았지만 친아들이나 양아들이 한국에서 개색키 전설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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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는 나름 존경받았지만 친아들이나 양아들이 한국에서 개색키 전설인 사람

최고관리자 0 216 09.29 13:33

조선후기 철종과 고종시대를 거치며 고위관료를 지낸 이호준은 예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판중추부사 등 요직을 두루 섭렵한 정계 거물이었다. 나름 존경도받아서 전라남도 작은 섬, 자라도엔 ‘이호준 불망비’가 서 있다. 조선시대 전라도관찰사 시절에 이호준이 가혹한 세금으로부터 섬주민들을 구해준 은덕을 기려 공적비를 세웠던 것 .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던 권력자였지만 그에게도 큰 고민이 하나 있었으니, 후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던 것이다.

딱 한 명 아들이 있긴 했으나 서자, 즉 첩의 자식이었다. 조선시대엔 서출과 딸에게 대를 잇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40대 중반에도 정실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양자를 들이기로 결정한다. 기이하게도 이호준의 가문은 대부분 양자로 이어져 왔다. 주위에 마땅한 양자감이 없어 적자계열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6대조에서 갈라져 나온 32촌뻘의 이호석이란 사람에게서 가까스로 양자를 얻게 됐다. 멀쩡한 자식을 두고도, 남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에게 모든 걸 물려주게 된 것이다.

몰락해서 촌무지렁이로 살던 이호석의 아들이 권세가 이호준의 양자로 선택된 데는 그 아이가 신동이란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섯 살 때 천자문과 동몽선습, 일곱 살엔 소학을 뗐다고 전해진다.

양자로 들어간 아이는 좋은 머리에 날개까지 달게 된다. 양아버지는 개인교사를 붙여 학문을 가르치고, 당대의 명필 이용희에게 서예를 배우게 했다. 25세에 증광별시라는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료의 길에 오른 아이는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1896년 서재필, 윤치호 등 개화파를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출범한다. 1대 회장에 안경수, 위원장에 이호준의 양자 이완용이 올랐다.

우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그 사람. 맞다. 친일파 중의 친일파 그 이완용이 독립협회 초대 위원장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독립협회는 백성들에게 성금을 모아 1897년 독립문을 건립하는데, 동아일보엔 기개 넘치는 독립문 현판 글씨도 ‘명필’ 이완용의 작품으로 보도됐다.

핵심 친일파 이완용에게 독립협회와 독립문이라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독립협회는 명을 숭상했던 조선이 청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결성된 단체. 독립문 역시 조선이 일제가 아닌 청나라로부터 독립한다는 의미로 건립된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청일전쟁 직후였기에, 일본 역시 독립문 건립을 - 일본의 승전을 조선인들이 축하해주는 - 승전기념비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일제 통치기간에도 독립문이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이완용을 비롯해 독립협회에 몸담고 있던 상당수의 인물들은 친미파였다. 장기간 미국에 파견됐던 이완용은 영어에 능통했다. 그리고 후에 이들 중 상당수는 한일병탄에 앞장서며 친일파로 변신한다. 이완용은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했음에도 일제의 핵심주구가 됐다. 

고종당시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에 오른 이완용은 을사조약, 기유각서, 정미7조약, 한일병탄조약 등 나라를 패망으로 이끈 결정적 조약들을 체결해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등에 오른 매국노의 대표인물이 됐다.

따지고 보면 친일파의 뿌리는 경술국치 훨씬 전인 1800년대 말의 청일전쟁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가 150여 년에 달한다. 그만큼 내린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

그래서일까?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도 이 땅의 기득권이 돼 부유한 삶을 누리며 ‘억울하게’ 빼앗긴 땅을 되찾고자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많은 국민이 식민역사를 부끄러워하며 다시는 나라를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은 종종 독일과 비교되곤 한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독일의 명재상 빌리브란트는 이미 50년 전인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해 유대인 위령탑에 무릎 꿇고 사죄했지만, 일본은 아직까지 한국을 혐오하고 조롱하기 바쁘다. 아베는 지난해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소재를 한국에 수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자충수가 됐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는 지금도 한국의 방역을 무시하며, 도쿄올림픽을 위해 상황을 감추기 급급하다. 그런데 우리 땅엔 아베를 편들고, 한국보다 일본의 방역이 더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친일파는 당당하고 건재하다.

출처 : 한국아파트신문(https://www.hapt.co.kr)

2020년 기사인데 글에 빼먹은게 정작 저 서자인 친아들에 대한 걸 빼먹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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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있는게 친아들 이윤용

앉아있는 게 이호준

양아들 이완용이 워낙 전설이라 그렇지 친아들 이윤용조차도 똑같았습니다. 이놈은 애비 이름 들먹이며 조선말기에

탐관오리짓하다가 이완용이랑 사이가 좋아 바로 경술국치에 나서며 이완용 못지 않는 매국노였죠

조선남작 작위를 받은…..게다가 이완용보다 훨씬 오래 장수하여 무려 85살까지 살고 1939년에 D지셨습니다

90년대만 해도 독립협회 뽕왜곡이 심했죠..역사교과서조차…..좋게 서술되었는데 실상은 친미,친일 매국노들 패거리라서

독립문도 왜구들이 남겨둔 이유가 설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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