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아내와 암살당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데,

흔히 '황태자 부부 피살'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당시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황태자가 아니라
추정상속인으로서 제위 계승자였음.
당시 군주인 프란츠 요세프 1세의
아들이 아니라 조카였기 때문.

원래 황제의 뒤를 이을 사람은
루돌프 황태자였지만,
가혹한 아버지로 인해 약해진 정신과
파탄난 부부관계로 괴로워하다가,
다른 여인을 사랑해 혼인 무효를
교황에게 요청했음.
이러려던 건 아닌데;;
레오 13세는 이를 거절한 뒤
아버지인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알려주었는데,
이로 인해 부자관계까지 완전히 파탄나자
루돌프 황태자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해 버렸음.
그냥 결혼하게 해 주기
VS 또 황위계승자 잃어보기
고르셈요
이후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한참 급이 떨어지는 귀족인 조피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미 황태자가 이런 이유로 죽었는데
또 황위계승자를 바꾸거나 하긴 힘들었기 때문.
어쨌든, 황제의 바로 밑 동생인 막시밀리아노 1세는
멕시코 2제국이 무너지면서 아들 없이 처형당했고,
둘째 동생이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아버지인
카를 루드비히 대공은...
성지에서 떠 온 물을 매일 마시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음.
집안 꼬라지
그래서 아들도 없고 동생도 없는 황제의 후계자는
둘째 동생의 장남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였지만,
직계 후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황태자가 아닌 황위계승자로 불렸음.
물론 사실상 황태자였기에
그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하자,
제국의 후계자를 잃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지만 말이지.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다 조피를 시녀 취급하려 할 때
내가 동등하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했느니라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급진적인 성향을 싫어한 황제가
전쟁을 일으킬 겸 그를 암살했단 음모론도...
조카였으니까 당시 유럽 사람들도 꽤 믿었던 거지.
아무리 서로 안 맞고 그래도 아버지가
제위를 이을 친아들을 죽이는 게 설득력이 있겠음?
어라
설득력이 없진 않네
하긴, 저 양반도 황태자를
정서적으로 학대하다시피 해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다
결국 죽게 만든 걸 보면
결이 비슷한 사람이긴 함.
어쨌든 당시 그가 사용했던 호칭은
'오스트리아 대공'이었기 때문에,
사라예보에서 '대공 부부'가
암살당했다는 표현이 보다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