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라는 질문을 두려워하는가 - 영화 .news

공지사항

누가 ‘왜’라는 질문을 두려워하는가 - 영화 <암살자(들)>.news

최고관리자 0 137 10.01 18:32

정리가 잘 된 글이라 가져와봤습니다.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27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보수신문과 종편, 국민의힘, 진중권 같은 유명 미디어 지식인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상영 중단 요구까지 나왔다. 나 역시 과거의 비극을 상업적 소재로 삼아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음모론으로 눈길을 끌려는 그저 그런 영화로 치부해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 용산역 CGV를 찾았다.

마침 관람료를 할인해주는 수요일이었다. 저녁 9시. 객석에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비난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극장 밖의 뜨거운 논란에 비하면 안의 풍경은 차분하고 조용했다.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려는 인물들에게 마음이 쏠렸고, 추적이 깊어질수록 긴장과 흥분도 더해졌다. 마지막 장면까지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범인은 붙잡혔고, 사형은 집행됐다. 국가는 사건을 종결했다. 그러나 형사와 기자들에게는 질문이 남았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을 소재로 삼지만, 이야기는 총을 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사건을 확인하려는 사람들과 그 확인을 막으려는 권력이 맞부딪친다.

영화를 떠받치는 축은 두 가지다.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의 의문을 좇는 추적극, 그리고 취재와 보도의 자유를 지키려는 언론인들의 싸움이다. 단서가 발견될 때마다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는 동시에, 그것을 확인한 사람들의 처지는 위태로워진다. 다음 사실을 알고 싶은 마음과 인물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 함께 관객을 붙잡는다.

 

1974년은 유신체제 아래 질문하는 행위에도 대가가 따르던 때였다. 전년의 김대중 납치사건이 남긴 충격 위로 고문과 연행, 언론 탄압이 이어졌다. 거리에서는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지고, 신문사에서는 기관원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무엇을 알아냈는지보다 무엇을 써도 되는지가 앞서는 시대였다.

영화는 정치적 억압에 경제와 외교의 문제를 겹쳐 놓는다. 한일수교 이후 들어온 자금과 일본 기업의 공사 참여를 연결하고, 부풀려진 계약대금을 통해 돈이 다시 일본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그린다. 경제개발의 성과 뒤에 어떤 거래와 권력관계가 있었는지 묻게 하는 장면이다. 다만 영화 속 계약의 구체적인 금액과 조건까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려면 별도의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정권이 짊어진 정치적 부담도 사건의 배경에 놓인다. 영화는 국가적 비극이 권력에 의해 어떻게 다뤄지는지 보여준다. 사건 이후 정권이 얻은 정치적 이익과 사건 발생의 원인은 구분해야 한다. 누가 이익을 얻었는지는 중요한 질문이지만, 그 답만으로 누가 사건을 기획했는지 입증할 수는 없다.

그런 시대의 한복판에서 광복절 기념식장에 총성이 울렸다. 육영수 여사와 성동여자실업고 학생 장봉화 양이 목숨을 잃었다. 대통령과 영부인을 중심으로 기억돼온 국가적 비극에는 한 여고생의 죽음도 함께 있었다. 영화는 이 사건에 가상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해 추적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추적의 중심에는 중부경찰서 경감 철구를 연기한 유해진, 동성일보 사회부장 재환 역의 박해일, 신입 기자 영일 역의 이민호가 있다. 철구는 현장의 경호 업무를 맡았던 경찰이고, 영일은 그날의 혼란을 직접 목격한 기자다. 재환은 이들이 품은 의문을 취재와 검증의 대상으로 옮긴다.

철구는 처음부터 국가를 의심하던 사람이 아니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애국심이 투철하고 태극기를 사랑하는 경찰이다. 그래서 그의 의심은 더 무겁다. 목격한 상황과 당국의 설명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이를 확인하려는 행동이 조직의 지시와 충돌한다. 국가를 믿었던 사람이 국가기관에 질문하게 되는 과정이다. 유해진은 그 믿음이 흔들리는 인물의 갈등을 몸으로 밀고 나간다.

재환에게는 사실을 밝힐 책임과 동료들을 보호할 책임이 함께 놓여 있다. 보도를 결정하는 판단에는 다른 기자들의 안전까지 걸려 있다. 영일의 열정은 그 신중함을 재촉한다. 현장을 목격한 신입 기자에게 사건은 남이 전해준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기자의 신념이 기사로 나가기까지 어떤 압력과 판단을 통과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박정민은 실제 문세광을 모티브로 한 저격범 문태광을 연기한다. 허진호 감독은 대사가 많지 않지만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지배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붙잡힌 범인이 이야기를 끝내는 대신 계속 움직이게 한다. 영화의 본격적인 추적은 그의 체포 이후 시작된다.

 

총성은 몇 차례였는가. 발사된 총탄과 발견된 탄환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각각의 총탄은 누구의 총에서 나왔는가. 영화는 여섯 차례 총성과 발견된 네 개의 탄환이라는 의문을 추적의 장치로 삼는다. 다만 현장의 총성에는 경호원의 대응사격도 포함해 검토해야 한다. 총성의 수가 문세광의 발사 횟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또 다른 암살자의 존재를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런 의문을 영화가 처음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과거 방송과 언론은 총성의 수와 탄환의 경로, 경호원의 발포를 여러 차례 다뤘다.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으로 수사에 참여했던 이건우는 훗날 현장검증에 앞서 경호실이 탄두를 수거해갔다고 주장했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도 이 증언과 탄흔에 관한 의혹을 소개했다.

확인되는 것은 그런 증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증언의 내용 전체가 입증됐다는 뜻은 아니다. 공식 설명과 수사 관계자의 증언이 엇갈린다면 자료를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일과 답을 확정하는 일 사이에는 검증이 필요하다.

문세광의 사형 집행도 영화가 붙드는 질문에 무게를 더한다. 그는 1974년 10월 19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2월 17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집행은 사흘 뒤인 12월 20일 이뤄졌다. 이 짧은 간격이 특정한 배후의 증거는 아니다. 그러나 범인의 입이 영원히 닫힌 뒤 남은 의문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는 물을 수 있다. 처벌의 완료가 충분한 규명을 뜻하는가.

영화 속 인물들이 마주하는 것은 검증을 가로막는 권력이다. 청와대 경호실과 중앙정보부 등 권력기관이 취재를 막고, 질문하는 사람을 위협한다. 폭압은 취조실에만 있지 않다. 쓰려던 기사를 접는 순간, 동료의 연행을 지켜보는 순간, 알고도 말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스며 있다.

허진호 감독은 사건의 배후를 확정하는 작품으로 접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언론시사회에서 “결론을 내리는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으며, 시대의 분위기와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기자들의 비중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자유언론실천선언도 그 과정에서 작품에 들어왔다.

여기에서 영화의 두 축이 만난다. 사건을 확인하려는 기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취재의 자유가 없으면 사실에 접근할 수 없고, 보도의 자유가 없으면 확인한 사실을 독자에게 전할 수 없다. 개인의 용기만으로 넘기 어려운 벽 앞에서 추적은 공동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은 외부 간섭의 배제, 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의 불법 연행에 대한 저항을 결의했다. 오늘 읽으면 언론 활동의 기본 조건이다. 당시에는 그 기본을 주장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영화는 선언의 문구 뒤에 있던 사람들의 두려움과 결단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를 향한 비난은 종종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된다. “그러니까 박정희가 육영수를 죽였다는 것인가.”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영화 속 가설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물론 감독의 의도와 관객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장면의 배치와 암시로도 의미를 전달한다. 특정한 결론으로 관객을 유도한다고 느꼈다면 그 표현 방식 역시 비평의 대상이다.

<암살자(들)>은 극영화지만 사실에 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확인된 사실과 관계자의 증언, 영화 속 가설은 구분해야 한다. 의혹이 제기됐다는 사실과 의혹이 입증됐다는 것은 같지 않다. 이 구분은 영화를 옹호하는 쪽에도 비판하는 쪽에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비판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실제 기록과 다른 장면이 있다면 자료를 제시하고, 영화적 상상력이 과했다면 어느 설정이 왜 무리한지 설명해야 한다. 의문 자체를 역사왜곡으로 규정하거나 영화가 명시하지 않은 결론을 유일한 메시지로 단정해서는 충분한 논쟁이 이뤄질 수 없다.

 

그러나 정치권의 반응은 작품의 사실관계를 따지는 수준을 넘어섰다. 9월 29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영화 불매 운동을 청년들의 자발적 행동으로 치켜세우며, 청년의 힘이 대한민국의 ‘좌파 진지’를 청소할 것이라고 했다. 관람 여부를 진영 싸움으로 옮겨놓고, 반박할 작품 대신 ‘청소’할 적을 지목한 것이다.

나경원 의원은 ‘육영수 여사 서거 역사왜곡처벌법’과 ‘6·25 역사왜곡처벌법’을 만들거나, 그러지 못한다면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진우 의원은 감독과 배우, 관계자들에게 박정희 대통령 묘지 앞에서 참배하고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사실관계에 관한 논쟁이 처벌과 사죄의 요구로 바뀌었다.

신동욱 최고위원은 즉각적인 상영 중단을 촉구했고, 조은희 의원은 허진호 감독 등의 국정감사 출석 필요성을 제기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건국전쟁>을 둘러싼 민주당의 대응을 들어 이중잣대라고 주장한다. 정치권의 기준이 일관됐는지는 따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 대한 압박이 이번 작품에 대한 압박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일관된 기준을 요구하려면 어느 영화에 대해서든 비평과 정치적 통제를 구분해야 한다.

50여 년 전 언론의 자유를 짓밟던 권력의 그림자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당시의 국가폭력과 오늘의 정치적 공세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편한 질문에 답하기보다 질문하는 사람을 굴복시키려는 태도는 낯설지 않다. 영화 속 기자들이 맞섰던 것도 무엇을 묻고 말해도 되는지를 권력이 정하려는 현실이었다.

희생자와 유족의 고통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 존중이 사건에 관한 모든 질문을 닫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작품에 동의하지 않을 자유도 다른 사람의 관람을 막을 권리까지 뜻하지 않는다. 오류가 있다면 기록과 자료로 답하면 된다.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관람을 대신하는 정치적 판정이 아니라 직접 보고 판단할 기회다.

영화 한 편에 노기가 충천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들고일어난 이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영화를 보고 하는 비판인가. 보았다면 사건의 의혹뿐 아니라, 질문을 막는 권력 앞에서 버티는 형사와 기자들의 모습도 보았는가. <암살자(들)>은 국가가 사건을 종결했다고 해서 언론의 질문까지 끝낼 수 있는지 묻는다. 오늘의 정치권 일부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불매와 상영 중단, 사죄 요구로 또다시 침묵을 강요하고 있다.

 

c57da8b825d021ea027c5cbd89b02095_1790847602_6055.jpg

d03298890663c57f4dcc9d589f35c119_1790847602_6197.jpg

5a2e062ea4db56ba558d63f6a14c59bb_1790847602_632.jpg

Comments

Category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오늘 방문자 3,848 명
  • 어제 방문자 12,992 명
  • 최대 방문자 7,902 명
  • 전체 방문자 540,960 명
  • 전체 게시물 32,106 개
  • 전체 댓글수 19 개
  • 전체 회원수 70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