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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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이 틀렸다!

최고관리자 0 55 10.16 01:00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과 실제 마한 지역에서 출토된 말고삐 및 재갈(말갖춤, 마구) 유물 사이에는 역사학·고고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간극과 반전이 존재합니다.

1.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 "말을 탈 줄 모른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韓)조에는 마한의 말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한(馬韓): "소와 말을 탈 줄 모른다(不知乘牛馬). 소와 말은 모두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낼 때 장례용(순장 또는 제물)으로 다 써버린다(牛馬盡於送死)."

2. 고고학 유물의 반전: 초기 마한의 재갈 유물

그러나 문헌과 달리, 실제 마한 문화권(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의 고분 유적을 발굴한 결과 말을 정밀하게 제어하기 위한 재갈과 말고삐 관련 유물들이 뚜렷하게 출토되고 있습니다.

초기 형태의 재갈 출토: 마한의 영역이었던 경기, 충청, 전라 지역의 기원전~기원후 초기 유적(토광묘, 목관묘 등)에서 철제 재갈과 고삐를 연결하는 고삐이음쇠(인환)가 발견되었습니다.

재갈의 구조: 당시 출토된 재갈은 두 가닥의 철사를 꼬아 만든 '자갈쇠'와 입 밖으로 재갈이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재갈멈추개(측판)'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말을 단순히 방목하거나 제물로 쓴 것이 아니라, 고삐를 묶고 제어하여 사람이 직접 말을 부렸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유물입니다.

3. 기록과 유물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

중국 관료의 제한적인 시각: 《삼국지》는 낙랑군이나 대방군을 거쳐 전해진 정보 또는 한나라·위나라 사신들의 단편적인 목격을 토대로 저술되었습니다. 마한 소국 중 일부 지역의 독특한 장례 풍습(말을 제물로 바치는 문화)이 마한 전체가 말을 타지 못한다는 식으로 과장되거나 오인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시대적 변화 (4세기 이후): 마한이 점차 성장하고 4세기 이후 백제 세력권과 융합되면서, 영산강 유역 등의 대형 고분(나주 신촌리, 영암 내동리 등)에서는 단순한 재갈을 넘어 화려하게 장식된 발걸이(등자), 안장, 발달된 말고삐 장식 등의 최고급 마구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마한은 말을 탈 줄 모른다"는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은 틀렸거나 한 단면만 본 것이며, 실제 유물(재갈, 고삐이음쇠)은 마한인들 역시 초기부터 말을 정밀하게 통제하고 이용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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