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사라진 야간 통행금지

공지사항

1982년 사라진 야간 통행금지

최고관리자 0 3 09.22 17:02

야간 통행금지는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8일 미군정이 치안 유지를 위해 선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미군 사령관 하지(Hodge) 중장이 서울과 인천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통행을 금지한 것이 시초입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 전쟁을 거치며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1982년 1월 5일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제될 때까지 약 36년 4개월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당시 야간 통행금지(밤 12시~새벽 4시) 시간에 돌아다니다가 경찰이나 방범대원에게 적발되면

현장에서 체포되어 유치장 구금과 즉결심판 처벌을 받았습니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통금 위반은 명백한 불법 행위였으며, 다음과 같은 단계로 처벌과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1. 밤샘 유치장 구금 (단속 당일)

자정이 넘어 단속에 걸리면 경찰서 유치장이나 파출소 대기소로 연행되었습니다.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새벽 4시까지는

집이나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꼼짝 없이 유치장 바닥에서 좁은 공간에 갇힌 채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2. 즉결심판 및 벌금(과료) 처분 (다음 날 아침)

새벽에 통금이 해제되면 경찰서장이 직권으로 여는 즉결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 판사 앞에 줄을 지어 서서 간단한 재판을 받은 뒤, 대부분 과료(소액 벌금) 처분을 받았습니다.

  • 통행금지가 해제되기 직전인 1970년대 후반 기준으로 통금 위반 벌금은 2,000원 정도였습니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200~300원 수준)

  • 돈이 없어서 벌금을 바로 내지 못하는 사람은 며칠간 유치장에 더 갇혀 일하는 구류 처분을 받기도 했습니다.

3. 직장 및 학교 통보 (사회적 불이익)

단순 벌금형이기에 정식 범죄 전과(빨간 줄)로 남지는 않았지만, 학교나 직장으로 통보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인 불이익이 컸습니다.

  • 학생의 경우, 학교에 연락이 가 정학이나 감봉 같은 징계를 받거나 부모님이 경찰서로 불려 와 각서를 쓰고 데려가야 했습니다.

  • 직장인 역시 출근 시간 직전까지 유치장에 갇혀 있다 보니 무단결근이나 지각을 하게 되어 회사에서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자정이 가까워지면 단속을 피하기 위해 통금 사이렌이 울리기 전 미친 듯이 달리는 사람들과, 마지막 택시를 잡으려는 이들로 매일 밤 거리마다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d8f1f45afc601bad3d82e94c3badaa4d_1790064601_8533.jpg

Comments

Category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오늘 방문자 2,620 명
  • 어제 방문자 16,640 명
  • 최대 방문자 4,942 명
  • 전체 방문자 64,504 명
  • 전체 게시물 2,731 개
  • 전체 댓글수 0 개
  • 전체 회원수 19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